[서울파이낸스 홍승희기자] 한국 사회가 '최순실 게이트'로 대통령 퇴진까지 거론되며 어수선한 사이에 미국에서는 인종차별, 여성비하 등 막말과 배타적 미국중심주의 발언으로 세계인에게 충격을 거푸 안겨주던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영국의 브렉시트에 이어 충격적인 소식들이 잇따르는 통에 멀쩡한 정신을 유지하기 힘들 지경이다.

힐러리 클린턴의 당선을 예측했던 미국의 대부분 언론들 역시 혼란과 충격을 겪고 있는 모양이다. 여론조사 결과에 지나치게 믿음을 준 결과여서 이미 지난 총선을 통해 여론조사의 완패를 경험한 한국인들로서는 앞으로 여론조사에 대한 신뢰가 뚝 떨어지게 생겼다.

미국 언론들도 그동안 미국 사회에서 중산층이 빠르게 붕괴하고 있는 현상을 못 본 것은 아닐 테지만 그들의 상실감이 얼마나 컸는지는 제대로 주목하지 못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여론분석의 실패에 대해 상류층과 하층민을 빼고 중산층의 여론을 위주로 선거 판세를 예측한 것을 주요 원인으로도 꼽는다는 얘길 들어보면 더 그렇게 믿게 된다.

영국의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승리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고들 한다. ‘영국이 먼저다’ ‘미국을 다시 강하게 만들겠다’. 브렉시트를 주도한 영국의 보리스 존슨이나 트럼프의 주장 자체가 우선 매우 닮았다. 영국민들은 유럽연합에 많은 분담금을 내지만 혜택이 적다는 불만이 표출됐고 미국민들은 한국을 예로 들어 안보무임승차를 비판하며 주한미군 분담금을 더 내게 하겠다는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다.

강대국이 힘을 잃으면서 나타나는 반작용의 하나가 피해의식이다. 의학적 용어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반인의 상식적 언어로 표현하자면 그렇다. 나는 큰 의무를 다하는데 내게 돌아오는 이익은 적다는 의식.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몰락한 지배층과 그 일가들의 행태도 이와 비슷하지 않은가. 나는 최선을 다 하는데 세상이 자신들에게 신의를 지키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따라서 소통을 거부하고.

한국에서도 태풍의 눈이 된 박근혜 대통령 또한 매우 심한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 듯하다. 툭하면 국기문란행위로 몰아붙이던 자신이 스스로 국기문란 행위를 하고 만 박근혜 대통령은 특히 ‘배신’이라는 말을 자주 입에 올린다. 공적 관계를 개인적 신뢰관계로 맺으려 하다가 본인의 뜻과 다른 결과가 나오면 튀어나오는 표현이 ‘배신’이다.

윤리와 도덕과 법은 대체로 비슷한 궤도를 가는 편이기는 하지만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사회적 동질성을 확인하는 데 있어서 역사가 오랜 나라에서는 윤리와 도덕이 좀 더 많은 영향을 미치고 역사가 짧은 나라, 특히 미국과 같은 이민자의 나라에서는 법에 강한 방점이 찍힌다. 그래서 미국 드라마를 보면 ‘정의(justice)’가 우리 사회와는 조금 다르게 정의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떻든 긍지를 잃은 국가나 개인이 ‘억울하다’는 생각이 커져가면서 대문 꽁꽁 닫아걸고 토라져 돌아앉는 모양새. 이게 작금의 미국이나 영국이 보여주는 모습이다. 그래서 세계화도 마뜩찮고 가난한 이민자들을 보면 화가 나며 그 분노가 종종 방향을 잃고 분출되기도 한다. 그런 성난 민심에 올라타는 정치인들이 그런 대중들의 분노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이처럼 성난 대중들이 그나마 미국이나 영국 같은 나라에서는 투표로 그들의 분노를 드러내지만 그마저도 막혀버린 사회일 때는 매우 파괴적인 방식으로 분출되기도 한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가 제한된 나라일수록 시위가 더욱 과격해질 수 있다.

어쩌면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폭탄테러나 이슬람국가(IS)로 몰려드는 젊은이들이 크게 줄지 않는 것도 그렇게 미래의 희망도 잃고 현실에 대한 분노를 풀 곳도 없는 세대의 극단적인 자기표현 방식일 것이다.

이런 분노는 인류가 오랜 시간 쌓아올린 문명을 파괴한다. 집단지성의 퇴보를 경험하는 이 기간이 인류역사에서 어떤 흔적을 남기게 될지 두렵기도 하다.

물론 브렉시트 영국이나 트럼프의 미국이 IS 수준의 극단까지 가지는 않을 테지만 그 국민들의 분노가 가난한 나라 이민자들을 향하듯 세상의 모든 약자를 향할 때 그 피해는 결코 IS의 테러 못지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남의 나라 걱정할 처지는 물론 아니고 우리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혹시 역풍을 기다릴지도 모르는 대통령의 웅크림도 가난한 대중의 분노만큼 두렵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