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탄핵정국의 로드맵
[홍승희 칼럼] 탄핵정국의 로드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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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홍승희기자] 드디어 야당 쪽에서 대통령 탄핵 로드맵이 나오는 모양이다. 아직은 대강만 선 상황이지만 탄핵안 국회 가결을 위한 정족수 계산으로 머뭇대던 더불어민주당 등 야 3당이 새누리당 비주류의 유력 대권후보 중 한명이었던 김무성 전 대표의 대선 불출마 선언과 동시에 탄핵추진에 앞장서겠다는 발표에 탄력을 받은 덕분이다.

밑으로부터는 100만 촛불민심이 떠받치고 있으나 국회내 정족수 부족 등 여러 변수들로 고민할 수밖에 없었던 야당의 입장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덕분에 정국의 소용돌이는 더욱 거세어졌고 자칫 박근혜 대통령 측에 반격의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는 위기감도 커져가고 있었다는 점에서 금주 중 벌어진 일련의 진전은 다행스럽다. 이미 탄핵의 당위를 논할 단계는 지났음이 이런 진전에서도 나타난다.

정치적 입장과 별개로 일단 현재 대한민국의 권력은 공중에 떠 있는 것이나 진배없기 때문에 염려가 클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은 여전히 국가원수로서의 업무를 수행하겠다고 강행하고 있지만 이미 국민적 신뢰를 잃은 대통령이 밀고 나가는 대내외 업무들이 정상적으로 처리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지 않은가.

게다가 대통령 궐위시 국가 통수권을 위임받아야 할 국무총리는 이미 대통령에 의해 해고된 상태에서 국내문제는 물론 국제회의 참석까지 하고 있는 황당한 상황이다. 경제부총리 또한 매한가지다. 이미 대통령에 의해 내정된 후임자가 턱 빼고 기다리는 상황에서 국정을 챙기는 게 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그림은 아니다.

도대체 누구에게 위임받은 권력인지 알 수 없는 그들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그 결과 또한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기 어려운 상태다. 그들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직접 위임받은 것도 아니고 대통령으로부터는 이미 해고된 상태이니 말이다.

여기 더 얹혀진 혼돈은 법무장관과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표다. 더 이상 새로운 인사를 할 겨를도 없는 박근혜 대통령 입장에서 그들의 사표가 수리될 가능성도 없지만 이미 사표를 낸 각료와 국정을 논하는 것도 넌센스다.

그렇다고 지금의 상황에서 누구에게 총리와 부총리의 인사권이 있는지, 새로운 각료를 선임하지 않고 정국을 이끌어가도 되는 것인지를 가리는 것도 혼란스럽다. 탄핵 정국을 주도하고 있는 야 3당이 국회 추천 총리 선임을 포기하고 현 체재로 갈 모양이지만 그렇다 해도 이미 해고된 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들에 대해서는 어떤 형식으로든 새로운 추인 절차가 따라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탄핵 정국이라는 것 자체가 그럴 수밖에 없지만 어쨌든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현재 국민들은 촛불 들고 광장으로 나섰지만 그들이 권력을 위임한 자가 누구인지도 불확실한 이런 상황에서 구체적 로드맵까지 그릴 수는 없다.

탄핵정국 주도세력의 중심에서 정당이 서둘러 로드맵을 제시하고 이미 수명을 다한 현 정부가 민의에 반해 추진하고 있는 여러 사안들의 진행을 막을 조치들을 서둘러야만 한다. 혼란을 틈타 민의에 반하는, 혹은 논란의 여지가 많은 여러 사안들이 현 정부의 입맛대로 속속 처리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혼란한 정국 틈새에서 이미 한일정보보호협정은 양국 관계자의 서명을 마치고 즉각 발효되기 시작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위한 현 정부의 로드맵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오히려 서두르는 기색마저 역력하다.

사드배치 문제는 미국에서도 새로운 정부가 아직 출범하지 않은 상태에서 서둘러지고 있지는 않지만 방위비 분담 문제에 대해서는 명색이 대한민국 방위청장이라는 이가 미국의 새 정부에 미리 큼직한 선물로 안겨주려는 발언을 공식적으로 했다.

이 모든 일들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새롭게 설계해야 하는 탄핵정국의 혼돈 속에서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정치권이 혼란 상황 수습에 서툴다는 방증이다. 이럴 때 외국에서는 손쉽게 한국을 요리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기 십상이다.

로드맵이 단순히 대통령 탄핵 이후의 정국 주도에만 초점을 맞추면 탄핵의 결과로는 소프트웨어 없는 하드웨어만 남게 된다. 이제는 좀 더 치밀한 대응책들을 서둘러 내놓고 지체없이 진행시켜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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