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홍승희기자] 역사적으로 큰 변동이 있을 때는 전조현상이 나타난다. 그 현상이 꼭 뒤따라 올 큰 역사적 변동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저 큰 태풍이 오기 전에 궂은 날씨가 먼저 나타나는 것일 수도 있고 작은 진동에도 예민한 동물들이 인간들이 눈치 채기 전부터 부산스럽게 피난을 가는 것일 수도 있다.

현대사에서만 봐도 그런 사례들은 쉬이 찾아볼 수 있다. 4.19혁명의 본격적인 불길이 타오르기 전에는 3.15 부정선거 반대시위와 그 시위도중 숨진 학생 김주열의 참혹한 시신이 갈아 앉혀졌던 바다에서 떠오르는 일이 있었다.

광주민주화운동이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큰 획을 긋기까지에는 부마항쟁에서 출발해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를 허물어뜨린 전국적인 학생시위로 발전하는 과정과 그에 맞선 신군부의 계엄령이 있었다.

이번 박근혜 정부의 일개 민간인들이 개입된 국정농단사태가 터지기 전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표밭인 경북의 한 귀퉁이 ‘성주’에서 주한미군의 ‘사드’ 성주배치에 반대하는 시위가 상당히 격하게 벌어졌다. 성주에서의 사드 배치 반대시위는 당초 박근혜 정부 퇴진까지 요구하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박근혜 정부의 불통에 팽배했던 대중의 불만이 폭발하는 데에 본의 아니게 불씨 노릇을 한 셈이 됐다. 물론 한편인줄 알았던 한 언론사와 척을 지는 일이 벌어지면서 본격적으로 방아쇠를 당긴 꼴이 됐지만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시위부터 시작해 정권의 텃밭 여기저기서 불거지는 대정부 불만들이 정권의 지역색을 넘어서는 전 국민적 분노로 커져가는 데 시발점이 된 사실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사태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확대되면서 사드배치 문제는 그 중요한 본질에도 불구하고 빛이 바래는 듯 보인다. 권한대행 체제의 정부나 국방부는 여전히 사드배치가 남북관계의 위험성을 줄여줄 것이라는 속 편한 주장만 내세우며 강행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정치권은 정권교체니 정치교체니 하는 데 몰두하느라 사드를 가벼운 주변부적 문제로 다루는 모양새다.

그러나 사드 문제는 정권교체 못지않게, 오히려 그보다 더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명백히 말해서 미국이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를 한국 정부에 강요하는 이유는 한반도의 평화 때문이 아니다. 물론 북한 핵무기에 대응한 요격효과가 있다는 미국이나 한국 정부의 주장을 일정 정도 인정한다고 쳐도 사드 배치의 진정한 목적은 미국의 대 중국 전략에 따른 것이지 한반도의 안정을 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부가 그동안 설득해온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사드가 배치된 한반도는 핵미사일이 날아다니는 전쟁이라도 벌어질 경우 방사능을 흠뻑 뒤집어쓰고 초토화될 위험성이 더 커진다. 날아오는 핵미사일을 현재 예정된 사드 사정권 내에서 요격할 경우 한반도 상공에서 핵폭발이 일어난다는 얘기인데 국방부는 어떤 과학자들을 끌어들였는지는 모르지만 과학자들에게 물었더니 방사능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하더라며 ‘안전’을 강조한다.

물론 사드는 고고도 미사일 방어 목적이다. 그래서 저고도 핵미사일 요격용으로 패트리어트 미사일 또한 짝 맞춰 배치하겠다는 게 미국과 한국정부의 방침이다.

저고도이든 고고도이든 한반도 상공에서 핵폭발이 일어나면 한반도는 대기권이든 지상이든 방사능을 뒤집어 쓸 수밖에 없다. 이미 유엔과학위원회 2000년 보고서가 대기권 핵실험 만으로도 전 세계에 걸쳐 방사능을 유출시켰다고 밝혔다. 하물며 한반도 상공에서 핵폭발이 벌어지는 데 과연 ‘안전’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현재 트럼프의 미국은 대중국 봉쇄작전을 강화해 나갈 태세다. 그런 미국의 행동에 가만히 앉아 당할 중국도 아니지 않은가. 우리는 그런 양 진영의 틈바구니에서 미국에게는 일본까지의 미국진영을 지키기 위한 교두보 역할 이상의 의미를 주지 못하고 있으며 중국에게는 미국 진영의 가장 약한 고리 이상의 가치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북한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줄 것이라는 미망에 사로잡혀 또다시 한반도를 ‘전장’으로 넘겨줘야 하는지를 정치권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정말 깊이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도 트럼프의 안보 무임승차론 타령까지 듣고 있는 처지가 한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