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홍승희기자]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많은 기대를 모으며 귀국한지 20일 만에 대선출마 포기를 선언했다. 유엔사무총장으로서의 경력이 국내 정치판에서는 먹혀들지 못한 것이다. 이미 귀국 후 며칠 만에 국내 정치인으로서는 부적절하다는 여러 사례들이 나오고 지지율도 지지부진했던 뒤끝이었지만 그래도 정치판, 특히 보수 세력 중에서는 충격 받은 이들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그의 중도하차를 두고 본인이 털어놓은 변도 있고 각 미디어마다 또 이런저런 분석도 나오지만 필자가 보기엔 그 무엇보다도 안전 지향적인 행정 관료적 사고방식이 역동적인 정치에는 맞지 않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정해진 틀 안에서 사고하는 방식으로는 종종 틀을 깨고 튀어나가기를 요구받는 정치판의 변화무쌍함을 수용하기 힘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진작 그의 중도하차를 예상했던 이들 중에서도 또 다른 대선 출마자인 안철수 의원을 보며 사업가 출신인 그가 정치판에 뛰어들고 느꼈던 좌절과 갈등을 대입시켜 보며 그런 결론을 내리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보게 된다. 사업도 물론 역동적이긴 하겠지만 그러나 사업은 한가지 목표만 바라보며 달려갈 수 있어 다양한 분야를 두루 아우르고 살펴가며 걸음을 떼야 하는 정치판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단순하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정치판에 뛰어들면 사업에 비해 월등한 도덕적 요구에 직면하게 된다. 물론 정치인들이 도덕적이라고 여기는 국민도 거의 없어 보이지만 일단 도덕적 검증대 위에 올려지면 어지간한 사람들이 그 검증을 견뎌내기는 끔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속담처럼 누구나 크고 작은 약점들은 다 갖고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일단 검증대 위에 올라서면 지나간 개인사가 시시콜콜 까발려지고 섣부른 말 한마디로 인해 만신창이가 되도록 여론의 뭇매를 맞기 십상이다.

물론 대중이 완전한 인간을 요구하는 것은 아닐 것이지만 미디어들은 크고 작은 약점들을 있는 대로 헤집어댈 테고 그렇게 까발려지고도 국민들이 상식선에서 이해 가능한 수준까지 걸러져야만 할 것이니 출마자들로서는 용광로에서 단련되는 강철이 된 기분이 들 듯하다. 그런 고련의 시간을 견뎌내지 못하면 결코 정치인으로서 입지를 찾기는 어려울 텐데 마련된 자리에서 상대적으로 편안한 일생을 살아온 관료 출신들이나 전문분야 사업가 출신들이 견뎌내기 결코 용이한 일은 아닐 것이다.

물론 이런 과정은 교수 출신이나 법조인 출신이나 그 어떤 다른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이들도 매한가지일 터다. 그 어느 분야라도 정치판만큼 역동적인 곳도, 다방면으로부터의 공격이 끊이지 않는 전장을 경험할 만한 곳도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어떻든 정치판은 총칼 대신 여론이라는 더 날카롭고 위험하기 그지없는 무기가 종횡으로 휘둘러지는 전장이다. 더욱이 그 여론이라는 것이 종종 조작되는 위험도 있어서 어느 총칼에 언제 상처 입을지 예측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정치판은 그 어느 곳보다 ‘시대’라는 까다롭기 그지없는 감각을 예민하게 느껴야 하는 곳이다. 젊은 세대는 그 시대를 예민하게 느끼지만 그런 전장에서 오래 구르다보면 국민의 상식과 도덕적 요구에 둔감해질 위험성도 커진다.

그래서 옛 문헌을 보면 예로부터 정치판에서 활동할 수 있는 나이를 40세부터 70세까지로 권하고 있다. 소학 정도 읽어본 수준인 필자가 기억하기로는 40 이전에는 스스로를 닦는 일에 치중하고 나이 70이 넘으면 일선에서 물러나 후학을 기르라는 충고도 있다.

현재에 비하면 학문을 닦고 나아갈 길이 정치밖에 없었으니 그런 권고가 있었겠지만 지금도 그 권고는 귀담아 들을만하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 인맥, 학맥 등 각종 연줄에 치어 직장생활이 힘든 이들이 흔히 안되면 ‘농사나 짓지’라고 했지만 그 농사가 책상물림들에게 만만할 리 없었듯 입 달린 누구나 훈수두기 적당한 정치판에 이런저런 사회적 경력을 내세워 진출하는 이들 역시 정치판을 만만히 보기 쉽다. 그러나 처음 뛰어든 이들에게 그곳은 생소한 또 다른 세상일 뿐이니 지나온 자신의 경력은 단지 밑천으로 삼고 새로 배우며 가겠다는 겸허함 없이 뛰어들어 꼴 우습게 되기 딱 좋은 곳이 정치판임을 그동안 수없이 봐왔다. 그런데도 그 정치사에서 배움을 얻지 못한 채 또 다른 부나방들이 뛰어드는 곳이 그곳이기도 하니 참 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