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구 은행연합회장, 금투협회 상대로 '작심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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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운동장론' 반박…"불특정금전신탁 허용해야"

▲ 사진=은행연합회

[서울파이낸스 정초원기자]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은 20일 "금융당국이 독립적 신탁업법을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불특정금전신탁이 논의 대상에 포함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밝혔다. 최근 금융투자업계가 금융당국의 신탁업법 제정 추진에 반발하고 있는 것을 의식한 '작심발언'으로 풀이된다.

◆"전업주의 허물고 겸업주의 택해야"

하 회장은 이날 은행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대형 IB에 종합투자계좌(IMA)를 허용했는데, 이는 은행의 불특정금전신탁과 차이가 없다"며 불특정금전신탁의 부활 필요성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불특정금전신탁은 고객이 투자처를 미리 정하지 않고 금융사에 돈을 맡기면 알아서 운용해주는 상품으로, 지난 2004년부터 그림자금융에 대한 우려로 신규 판매가 금지됐다. 최근 금융당국이 자본시장법에서 신탁업법을 따로 떼어내 신탁업을 키우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 만큼, 관련 규제를 풀고 금융권의 겸업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는 게 하 회장의 주장이다.

증권업계 입장에서는 타업권에 수익원을 뺏기는 상황이 올 수 있어, 그간 신탁업법 제정을 강하게 반발해왔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도 앞서 열린 취임 2주년 간담회를 통해 "신탁업법 제정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은행이 자산운용업을 건들여서는 안된다"고 경고한 바 있다.

반면 이날 하 회장은 신탁업법 제정을 포함해 최근 금융투자업계에서 나온 각종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 그는 "금융투자업계는 은행의 지점수가 많고 영업이 높기 때문에 같은 업무를 허용해줘도 싸우기가 곤란하다는 얘기를 한다"며 "하지만 증권사들이 지난 5년간 지점망을 35% 감축시키고 인원도 20% 줄여 은행에 비해 영업망이 줄었는데, 이런 구조조정의 결과로 영업력이 약해진 것을 두고 정책당국이 책임지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또 증권업에 불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겠다는 황 회장의 발언과 관련해서는 "우리나라 금융산업은 전업주의다. 은행과 증권, 보험에 '각각 다른 운동장에서 놀라'는 방향이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증권업이 지급결제나 환전업무를 허용해주지 않는 것에 대해 '운동장이 기울었다"고 표현하는 것은 축구장에서 손도 쓰고 발도 써야 한다고 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하 회장은 결과적으로 종합운동장을 만드는 겸업주의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겸업주의를 택하면 금융산업 전체적으로 범위의 경제가 넓어진다. 이것이 국제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며 "결국은 금융사의 대형화가 쉬워지고, 고객들에게는 내부 정보 공유와 금융사간의 경쟁을 통해 최적의 투자상품과 서비스, 좋은 가격을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투자협회가 지난달 보고서를 통해 '은행의 업무영역 확대가 은행 자체의 매출이나 수익성 제고에 기여하지 못했다'고 분석한 것과 관련해서도 반박했다. 그는 "객관적인 자료로 비교해야 하는데, 지난 5년간의 평균치를 보면 은행의 자기자본수익률(ROE)은 4.7%, 증권은 3.5%, 생보 6.3%"라며 "(금투협회가) 타업권에 대해서 '수익성이 낮다'는 언급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다만 "국내 은행의 비용 효율성이 글로벌 금융회사에 비해 좋다고는 생각치 않는다. 앞으로 더 높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수익을 내는 데 있어 장애 요인이 전업주의 행태인 만큼, 향후 겸업으로 가는 게 낫지 않겠냐"고 거듭 강조했다.

◆"다양성 위해 수수료 신설 필요"

하 회장은 최근 씨티은행이 '계좌유지 수수료'를 신설하기로 한 데 이어, KB국민은행이 '창구거래 수수료'의 도입을 추진하는 것과 관련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그는 "단순히 수수료를 부과해서 돈을 벌겠다는 관점에서 보는 것보다는, 은행별로 차별화하겠다는 관점에서 봐달라"며 "은행에 따라 계좌유지 수수료를 받는 데가 있는 반면, 인터넷은행처럼 계좌를 열기만 해도 포인트를 주겠다는 곳도 있을 수 있다. 다양하게 가는 것이 발전의 방향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세계적으로 우리나라의 은행 수수료가 낮은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라며 "정상적인 수수료가 보장되지 않으면 이는 결국 금융소비자의 불편으로 돌아간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은행이 자동화기기(ATM)를 운영하는 데 드는 원가가 500원인데, 수수료를 지속적으로 200~300원만 받게 되면 기계를 줄일 수밖에 없으므로 결과적으로 수수료가 비싼 전문업체 기계만이 남게 된다는 설명이다.

은행권의 성과연봉제에 대해서는 정권과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추진할 과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호봉제 임금 체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은 어느 정부의 개혁 어젠다가 아니라 모든 산업의 공통적인 숙제"라며 "반드시 실행돼야 하는 과제로, 당연히 호봉제가 철폐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은행의 고배당 논란에 대해서는 "우리나라는 전세계적으로 배당성향이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라며 "공산주의를 채택한 중국보다 낮다"고 대응했다. 특히 외국인 투자자에게 나가는 배당금과 관련해 "일반기업에 비해 그 비중이 높은 것도 아닌데, 유독 은행산업에만 외국인 투자자 관련 지적을 하는 것은 이해가 안간다"며 "리스크를 안고 자본시장에 참여한 투자자가 배당을 받는 것에 시비를 거는 것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은행 배당에 대해서는 감독당국이 권한을 갖고 행사해야 하지만, 확실한 가이드를 가져야 한다."며 "자본충실도나 자산의 질이 나쁘면 배당을 못하게 해야 한다. 다만 국내 은행의 경우 BIS비율 등이 다양하다. 각각의 은행 상황에 맞게 가이드를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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