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홍승희기자] “미국을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 마라. 일본이 일어나니 조선은 조심하라”

해방공간에서 민중들 사이에 떠돌던 이 말이 가진 예언의 힘에 종종 몸이 떨려온다. 자주 자강을 강조하던 이 말은 이후 한국 현대사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색깔 짙은 현실이 되어 나타나곤 한다. 여기서 중국이 하나 빠져 있지만 결국 한국 현대사는 주변 강대국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지혜롭게 풀어나가며 우리를 우리답게 지켜나가야 하느냐는 숙제가 늘 함께 해왔다.

민중들의 소박한 바람과는 달리 남과 북이 갈라진 채 동족 간 참혹한 전쟁까지 겪었다. 그러고 나니 그 불신은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지기는커녕 갈수록 짙어져만 갔다. 개개인이 겪은 비참했던 전쟁의 기억이 남북간 상호 불신의 토대가 됐지만 그 못지않게 집권세력들은 남이고 북이고 간에 그 적대감을 심화시키는 데 몰두해온 탓이 또한 크다.

집권세력은 지지기반이 취약할수록 민중들의 단결을 두려워한다. 지금 광화문에서, 시청앞에서 벌어지는 탄핵 목소리와 반대 목소리를 내는 이들의 갈등도 그 이면에는 국론분열로 이득을 보려는 기득권 세력들의 숨은 손이 뻗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을까.

지난 3.1절에 하필 집안의 혼사가 있어서 전철을 타고 나가다 태극기를 든 한 남성을 보았다. 나이는 70세 전후로 보였지만 그것도 확실치는 않다. 쉽지 않은 삶을 살아온 듯 보이는 그의 행색으로 보면 실제 그의 나이가 더 젊을 수도 있었으니까. 그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는 듯, 혹은 함께 할 사람을 찾는 듯 주변을 둘러보는 데 그 표정은 굳어 있었다.

대개의 승객들은 그 노인에게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어쩌면 강한 주장을 갖고 나서는 그 노인이 보기에는 그런 승객들의 모습이 실망스러웠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들에게 기득권에 비판적이거나 현실 개혁을 요구하는 이들은 모두 하나의 색깔로만 보이는 듯 하고 따라서 그들 눈에는 이 사회가 심히 걱정스러울 법도 하다. 진보는 곧 종북 빨갱이라는 단순 등식을 그동안 제도언론들도 앞장서서 세뇌시켜왔으니 그들이 오늘날 보이는 반응이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겠다.

어린 시절 반공포스터 숙제를 받으면 무조건 뿔 달린 빨간 북괴 그림을 그려야 했던 필자 세대에게 빨갱이라는 말 한마디가 얼마나 무서운 낙인이었던가. 그런 교육의 틀로부터 조금은 자유스러워진 이들도 있지만 여전히 그 낙인에 주눅 들었던 기억 그대로 성장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은 살기 위해서라도 더욱 강한 적대감을 드러내는 삶이 일상이 됐을 터다.

그래서인지 노동운동 현장에서 빨간색 머리띠는 곧 빨갱이의 상징으로 낙인찍었던 게 우리 사회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그의 당 새누리당 색깔을 과감하게 빨간 색으로 선택했다. 보수당의 본령이 아니라면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만약 민주당이 먼저 빨간 색을 택했다면 언론이 어떻게 평가했을까를 생각해보면 분명하다.

물론 이즈음 그 빨간 색이 최순실씨와 함께 또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어서 레드 콤플렉스를 일정 정도 희석시키는 효과도 내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빨갱이라는 낙인은 평생의 족쇄로 작용할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단죄 행위다.

그 빨갱이에는 한때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도 포함돼 있었다. 남로당원이었던 박정희의 이력은 워낙 유명하니 넘어가더라도 그가 소위 ‘전향’을 통해 그 때까지 자신의 ‘동지’였던 이들을 모조리 넘기며 사형을 피했다고 알려져 있고 집권 초기에는 그 이력으로 인해 야당의 공격을 받기도 했었다.

그런 그의 과거만 알고 박정희 집권 후 형편은 감안하지 않은 김일성의 밀사로 내려왔었다고 알려져 있다. 황태성, 박정희의 형이자 공산주의자였던 박상희의 친구이자 박정희의 고향 선배이기도 한 그를 박정희는 간첩 혐의로 사형시켰다. 그 피는 박상희의 사위인 김종필의 손에 묻히면서 야당의 이념 공세를 피해갔던 것이다. 그렇게 집권한 박정희는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그 후 수많은 민주인사들을 빨갱이로 낙인찍었다.

이런 정치사의 아이러니야말로 한국 현대사의 실체다. 팩트 보다는 단죄할 권력을 가진 세력의 입맛에 맞춰 양산된 ‘빨갱이’. 그런데도 여전히 한국은 레드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노인들 손에 벌겋게 달아오른 빨갱이 낙인을 들려주고 거리를 헤매게 한다.

그 속에는 태극기와 함께 성조기를 든 노인들도 섞여있다. 해방공간에서의 그 지혜를 잊은 채 이 나라가 누군가에 기대지 않고는 홀로 서지 못한다고 믿는 슬픈 현대사의 그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