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전수영기자] “비록 오늘은 이 진통의 아픔이 클지라도 우리는 헌법과 법치를 통해 더 성숙한 민주국가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대한민국의 운명을 가른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한 이정미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이임사에서 밝힌 말이다. 자신을 포함한 헌재 재판관들이 내린 결정으로 인해 국론이 분열되고 갈등이 고조될 수 있지만 민주국가로 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판단이었다는 것을 강조한 말로 풀이된다. 어떤 판단은 그 여파가 개인, 기업, 국가에까지 미친다. 그만큼 모든 '판단'은 신중하게 내려야 하고 최대한 공명정대해야 한다.

산업은행이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크다. 그런데 최근 산업은행의 행보는 ‘갈 지(之)자’를 그리고 있다. 대우조선해양과 금호타이어에 대한 산업은행의 판단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들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의 워크아웃 가능성이 제기됐다. 눈덩이처럼 커져버린 부채로 인해 워크아웃을 거론하는 상황까지 이르렀고, 정부는 급기야 대우조선해양을 살리기 위해 수조원을 더 지원하기로 잠정 결정했다. 그동안 50조원이 넘는 자금을 지원했음에도, 다시는 지원하지 않겠다고 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또 다시 추가 지원책을 들고 나온 것이다.

지금까지 한 기업을 위해 정부가 이렇게 많은 나랏돈을 투입한 적이 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종사자들에겐 유감이지만 대우조선해양이 그렇게까지 해서 꼭 살려야 하는 기업인지도 솔직히 의문이다. 업황이 안 좋아 대우조선해양을 사려는 업체가 없다고 해서, 잠수함과 같은 방위산업 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는 위험성이 있어 처분을 못한다면 국민의 복지 향상을 위해 써야할 세금이 계속 투입될 수밖에 없다. 잔존가치가 높아서 살려야 한다지만 그 잔존가치를 위한 노력이 국민 전체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다면 결단밖에 없다.

눈을 돌려 보자. 대우조선해양을 살리기 위해 산업은행이 혈세를 퍼붓는 것과는 달리 금호타이어 매각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은 컨소시엄을 통해 금호타이어 지분을 인수하겠다 하고 있고 산업은행은 당초 우선매수청구권을 박 회장 개인에게로 한정했기 때문에 컨소시엄을 통한 지분인수는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원칙'이라는 잣대를 대면 산업은행의 말은 일리가 있다. 우선매수청구권을 박 회장 개인에게 한정했기 때문에 제3자와의 컨소시엄으로 통해 금호타이어 지분을 인수하는 것은 분명 원칙을 어기는 것이다.

금호아시아나의 입장은 다르다. 금호아시아나 측은 박 회장 등이 금호타이어를 경영하지 않으면서 우선매수청구권을 제3자에게 전부 양도하거나 우선매수권 행사 이후 1년 이내에 제3자에게 프리미엄을 받고 경영권을 포함한 지배지분을 양도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규정된 조항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금호아시아나는 법적 다툼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대우조선해양 지원에 대해 국민이 불만을 갖는 것도, 금호타이어 우선매수청구권 행사에 대한 박 회장 측의 반발도, 산업은행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태생적으로 산업은행은 정부의 입김이 절대적으로 작용하고 있어 독자경영보다는 정권의 눈치를 봐야하고 수익보다는 안정을 택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직원들은 애꿎게도 ‘철밥통’이란 억울한 소리까지 듣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생존을 위한 시련에 맞닥뜨렸고, 금호아시아나는 그룹 재건을 위해 마지막 퍼즐을 맞추고자 안간힘을 쏟고 있다.

따라서 산업은행의 공정한 기준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한 기업을 살리고 다른 한 기업을 사지로 내몰게 되면 그 후폭풍은 실로 엄청나다. 솔로몬의 지혜로 올바른 판단을 내려야 한다. 이정미 재판관의 이임사를 천천히 다시 한 번 되새겨보길 바란다.

<산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