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김태희기자]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정신건강 이상설이 표면화됐다.
신 총괄회장은 배임·탈세 혐의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출석했지만 재판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등 원활한 재판 진행이 어렵다고 재판부가 판단했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4부(김상동 부장판사)는 20일 오후 2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 혐의로 기소된 롯데 총수 일가의 첫 정식 재판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신 총괄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 씨,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함께 출석했다.
신 총괄회장은 '공짜 급여'에 따른 횡령과 함께 858억원의 조세포탈,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과 배임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서씨에게 롯데시네마 매점 운영권을 독점하게 해 계열사에 손해를 입힌 사례가 배임에 포함됐다.
신 총괄회장은 재판이 시작 20분 후에 휠체어를 탄 채 법정에 도착했다.
김 부장판사가 생년월일, 주소 등을 묻자 신 총괄회장은 신상정보를 말하지 못하고 웅얼거렸다. 오히려 신 총괄회장은 "이게 무슨 자리냐"고 되물었다. 두 아들과 변호사로부터 "회삿돈을 횡령했다는 혐의를 받았다"는 설명을 듣자 "내가 횡령이라고?"라고 말하며 웅얼거렸다.
이어 검찰이 신 총괄회장 공소 사실을 발표하는데 신 총괄회장은 낮은 목소리로 뭔가를 계속 읊조렸다. 지켜보던 김 부장판사는 "여기까지만 하자. 신 총괄회장에 대한 변론을 분리하겠다"면서 서면으로 의견서를 제출할 것을 명했다.
변호사의 진술이 이어진 뒤 김 부장판사는 신 총괄회장에게 "퇴정해도 된다"고 말했다. 수행원이 휠체어를 끌려 하자 신 총괄회장은 "나는 할 말이 있다. 어디 가느냐"고 소리쳤다. 주변인들이 "변호사들이 나중에 서면으로 답변할 것이다", "여기는 법원이다"라고 설명해도 막무가내였다.
신 총괄회장의 의사소통은 주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변호사가 대신했다. 신 총괄회장과 대화를 나눈 신 회장은 "누가 회장님(신 총괄회장)을 기소 했냐, 여기 계신 분들이 누구냐고 물었다"고 말했다. 변호인이 "검찰에서 (기소를) 했다"고 신 총괄회장에게 설명하자 그는 곧바로 "책임자가 누구냐"며 "이렇게 법정에 세운 이유가 뭐냐"고 소리치기도 했다.
이어 변호인은 재판부를 향해 "이 회사는 내가 100% 가진 회사다. 내가 만든 회사고, 100% 주식을 갖고 있는데 어떻게 나를 기소할 수 있느냐. 누가 나를 기소했느냐"라며 신 총괄회장의 말을 전달했다.
이에 김 부장판사는 "나중에 설명해 줘라"며 "그 정도면 퇴정해도 된다"고 거듭 퇴정을 허락했다. 신 총괄회장은 계속해서 말을 하려 했지만 거의 반강제적으로 재판정에서 나왔다. 이 과정에서 신 총괄회장은 퇴정을 거부하며 지팡이를 휘두르기도 했다. 사실혼 관계인 서씨와 맏딸인 신 이사장은 눈시울을 붉혔고 신 회장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한편 신 총괄회장은 이달 중 롯데쇼핑 등기이사 자리를 38년 만에 내려놓는다. 이어 롯데건설, 롯데자이언츠, 롯데알미늄 등기이사직도 퇴임할 예정이다. 이미 신 총괄회장은 사업결제 등 스스로 의사결정이 어려운 상황으로 성년후견인 최종심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