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전수영 기자] 사상누각(沙上樓閣)은 말 그대로 모래 위에 세워진 누각이란 뜻으로,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면 곧 무너진다는 고사성어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은 지반이 약할 뿐만 아니라 가라앉는 모래 특성상 시간이 지나면서 집은 모래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건설사들은 모래지반 위에 집을 지을 때 쇠로된 파일(말뚝)을 박아 집이 침하되는 것을 막는다.

집은 사람들이 생활을 영위함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수단이다. 하지만 평생을 일해도 집 한 채 장만하기 힘들다는 얘기가 회자될 때마다 ‘과연 집을 살기(live) 위해 사는(buy) 것인지, 사기(buy) 위해 사는(live) 것인지 모르겠다’는 서민들의 푸념과 함께 시름도 깊어진다.

다른 한편, 고생 끝에 집을 장만했지만 그 전보다 더 힘든 고통을 겪는 이들도 있다. 대우건설이 청라국제도시에 지은 푸르지오 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해 청약했던 이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청라 푸르지오는 청라국제도시의 랜드마크로 불린다. 57층 높이의 청라 푸르지오에서는 인천 앞바다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고, 영종도의 풍경도 감상할 수 있다. 분양가도 상당히 높아 건설 당시부터 주목받았던 곳이다.

하지만 아파트 완공 후 일부 층에 철근이 누락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이를 놓고 몇 년간 입주를 거부하는 이들과 대우건설과의 법적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입주예정자들은 '부실시공'을, 대우건설은 '안전에 이상 없음'을 각각 주장하며 물러서지 않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1심 재판부는 "일부 철근 누락이 발견됐으나 구조적 안전성에는 영향이 없고, 내구성 증진을 위해 별도의 보수보강이 필요치 않다"며 입주예정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

한 마디로 요약하면 '주거하는 데 별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법원의 판단처럼 철근 몇 가닥 안 들어갔다고 사는 데 지장이 없을 수는 있다.

그러나 철근 수는 엄연히 시공을 위한 시방서와 설계도면에 적시돼 있다. 시공사는 당연히 시방서와 설계도면에 입각해 시공을 해야 한다. 시방서와 설계도면에 근거하지 않고 시공을 한다면 향후 어떤 건설사도 시방서와 설계도면만 그럴싸하게 만들어놓고 안전하다는 판정을 받을 정도로만 시공해도 무방하게 된다. 계약자와의 약속을 어겨도 문제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번 논란은 수년 전부터 건설사들이 규정보다 높은 안전도로 건축물을 짓는 추세와 무관치 않다. 안전성을 높이겠다는 것은 칭찬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다르다. 건설사들이 안전을 이유로 더 많은 시멘트와 골재, 더 많은 철근을 넣으며 분양가를 올리고 있다. 반면 공사현장에서 발생하는 안전사고에는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며 하도급업체의 잘못으로 떠넘기면서 분양할 때만 모든 공을 자신들에게 돌린다. 급기야 대우건설처럼 철근을 계획보다 덜 넣고도 법원으로부터 '문제없다'는 판결을 받아내기도 했다. 잘못된 처사다.

어쨌든 1심 법원은 안전하다는 이유로 앞선 모든 잘못을 용서하는 듯한 판결을 내렸다. 결과보다는 과정이 우선시되는 사회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현실과는 분명 거리가 있다.

몇 년 전 청라 푸르지오 건설현장에서 철근이 절반밖에 시공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털어놓으며 기자와 인터뷰를 했던 철근반장은 "기술자로서의 양심을 속일 수 없어 괴로웠다"고 심경을 말했다. 인터뷰 이후 해당 철근반장은 일자리를 잡기 위해 무척이나 힘든 과정을 겪었다고 들었다. 과정상 문제를 숨길 수 없어 향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면서도 그는 용기를 낸 것이다. 그가 지나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자신이 지은 건물이 '사상누각'이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수년간 대우건설과 맞섰던 이들이 항소심을 준비하고 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르지만, 그 결과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