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홍승희 기자] 정치권에서는 공감능력 제로의 행태를 보이는 정치인들로 인한 구설이 난무한다. 지역주민들은 몇십년만의 물난리로 여러명이 죽고 많은 이재민이 나와 엄청난 피해를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복구할 엄두도 못내 전국민이 안타까워 하는 판에 여유롭게 외유를 떠난 도의원들로 한주의 이슈를 만들었다. 게다가 분노하는 주민들을 설치동물로 비유한 발언을 해 아예 기름을 끼얹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급식조리사들을 향해 누구나 할 수 있는 하찮은 일을 하는 '그냥 밥하는 동네 아줌마들'이라고 비하하는 발언을 내뱉는 정치인으로 인해 부글부글 속을 끓이는 노동자들이 속출한다. 이 정치인으로 인해 상처받은 노동자들은 급식조리사들만이 아니다. 비교대상으로 끌려나간 간호조무사며 요양사들까지 싸잡아 비하의 표적이 됐다. 한마디로 고급노동자만 정규직의 자격이 있다는 우리사회의 비뚤어진 엘리트의식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이런 일이 비단 이 두 사례 뿐은 아니다. 표를 얻을 때는 참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지만 일단 당선되고 나면 그 유권자들을 하찮게 여기는 일이야 그간 부족함없이 봐온 일이 아닌가.

그런데 진짜 심각한 문제는 이런 정치인들이 법의 테두리를 잘 알고 이용하는 반면 자라나는 아이들은 그런 TV에도 자주 나오는 유명한 어른들을 보며 법의 테두리 밖으로 뛰쳐나가 끔찍한 범죄조차 서슴없이 저지른다는 데 있다. 그런 공감능력 없는 어른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한 것을 보고 배우는 것 못지않게 그들이 공감능력의 중요함을 모른채 기른 아이들이 똑같이 자라 범죄자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생계형 범죄도 많고 그런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이야 옛부터 늘 있어왔다. 다만 아무런 죄의식조차 없이, 또 납득할만한 이유도 없이 저질러지는 범죄들이 늘고 있고 이런 범죄자들은 그 범죄의 결과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일에 무감각하다는 점이다.

소위 사이코패스적 범죄의 싹은 학교현장에서부터 자라고 있어서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한 암담한 전망마저 나올 지경이다. 중·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소위 왕따, 집단폭력 등을 주도하는 아이들에게는 피해학생들이 느낄 고통이 전달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상대가 얼마나 고통을 느끼든 상관없이 그저 '장난일 뿐'이라는 아이들의 답에 이미 그런 경향이 보인다. 심지어 초등학생을 살해한 소녀들 역시 스스으로 로 한 짓을 단지 '장난'으로 여기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판이다. 피해학생들은 견디다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끊이질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해학생들은 별다른 느낌이 없어 보인다.

그 가해학생들 대다수는 사회지도층 혹은 부유층 자녀들인 경우가 많다고도 한다. 그 아이들의 그런 성장에 과연 그 부모들은 책임이 없을까 싶다. 그 부모들의 그 책임은 확장하자면 사회적으로도 똑같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인성교육을 하기보다, 공감과 배려를 가르치기보다 남을 이기는 법, 남들 위에 서는 법을 익히도록 강요하고 있는 불구의 사회를 만들고 있다.

그런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중에 스펙을 올릴 영어단어 하나 더 외우게 하고 수학문제 하나 더 기억시키는 일에 모든 부모가 매달리도록 강제하는 힘이 결국 이 사회의 권력과 재력을 가진 지도층에게서 나오지 않는다고 말 할 수 있을까. 그들의 삶이 바로 그러했고 그런 삶에 대해 고민하기보다 순종하며 남들 위에 서기 위해 내달려왔기에 이 사회의 지도층이 되었으니까.

정치인들의 공감능력부족과 아이들의 학교폭력을 등치시키는 게 과하다 여길 수도 있지만 결국 그 바탕에는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한채 이 사회의 엘리트로 키워진 어른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아이들보다 좀 더 약다는 사실을 빼면 별 차이가 없지 않은가.

이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의 아이들은 글로벌시대에 세계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세계인과 더불어 살며 때로는 그들과 경쟁하고 또 때로는 공존을 모색하며 살아가야 한다. 상대에게 공감할 줄 모르고, 상대를 이해할 수 없는 인성으로 세계 속에서 공존과 경쟁의 마당에 제대로 적응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잠깐의 성공으로 자가만족을 느낄 때는 있을지 몰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