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서지연 기자] 또 한 번의 예견된 실패일까.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유병자 실손보험을 두고 보험업계가 혀를 내두르고 있다. '허울뿐인' 정책성 보험으로 전락할 징후가 벌써부터 역력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 확대와 함께 유병자 실손보험을 연말까지 도입하기로 했다. 그간 질병 이력이 있는 유병자들은 실손보험 가입을 거부당해왔다. 보험사들은 입원과 수술, 암, 뇌·심장 진단비 등을 보장하는 유병자간편보험을 내놓았지만 실손으로 보상해주는 상품은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손해율이 높아 보험사에 '돈'이 안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금융감독원 주도로 보험개발원과 손보사 4개사, 생보사 4개사와 유병자 실손보험 출시를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 논의를 진행 중이다. 보험개발원이 적정요율을 산출하고 보험사와 함께 요율의 적정성과 인수범위 등을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사들이 '돈'이 안되는 유병자 실손보험 TF에 참여한 건 당국이 주도권을 쥐고있기 때문이다. 논의 과정에서도 당국의 입김이 십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TF구성 과정에서 한 보험사는 당국 의견에 반기를 들었다가 TF팀에서 빠지게 됐다는 웃지 못할 뒷얘기도 나올 정도다.

업계는 이를 두고 또 한 번의 정책성보험 참패를 우려하고 있다. 앞선 사례를 살펴보면, 정부 주도로 출시된 정책성보험은 흥행성공 사례가 희박하다. 지난 2001년 출시된 장애인 전용상품인 '곰두리보험'과 2011년 시판됐지만 2년만에 판매를 중단한 이명박 정부의 '녹색자동차보험', 박근혜 정부가 제시한 '금융사기보험'·'난임보험' 등만 살펴봐도 그렇다.

유병자 실손보험의 실패를 우려하는 가장 큰 이유는 판매 주체인 보험사가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병력이 있는 사람이 가입 가능한 유병자 실손보험은 손해율이 상당히 높아 보험료가 비쌀 수 밖에 없는데, 당국이 보험료 수준에 압박을 가할 게 불보듯 뻔하다고 업계는 예측하고 있다. 영리를 추구하는 보험사 입장에서는 리스크가 큰 상품을 당연히 팔고싶지 않을 것이다.

보험사들이 판매에 적극적이지 않으면 정책성보험을 판매하는 보험사 설계사들 역시 유병자 실손보험을 소극적으로 판매하게 된다. 상품이 출시되도 홍보를 꺼리는 경우도 더러 있을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당국은 이같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정책성보험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선 정부의 보험시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아무리 취지와 의도가 좋다해도 보험사는 물론 시장에서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정책은 '무용지물'이 된다. 정책성보험을 제시하기 전 판매당사자인 보험사들의 이해관계를 따져 충분한 합의가 필요하다. 또 민간에 역할과 책임을 떠넘기기보다, 정부에서 실효성 있는 정책을 마련한 후 시장의 수요·공급 기능에 맡겨보는 시도가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자마자 '유병자·은퇴자 실손보험', '소방관 보험' 등 취약계층을 위한 정책성보험들이 논의되고 있다. 좋은 취지에서 추진된 만큼 앞선 실패사례들을 이번 정권에서는 반복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