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정수지 기자] 정부가 금융을 지배하는 것을 뜻하는 '관치금융'은 금융권 인사철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키워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정부는 관치금융을 비롯한 낙하산 인사를 적폐로 규정하며 적폐청산에 강한 의지를 보이지만 이 논란은 매번 되풀이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한국거래소 차기 이사장 선임도 이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소신에 따라 지난달 17일 정찬우 이사장이 갑작스레 사의를 표명하자 거래소는 차기 이사장직 공개 모집에 나섰다.

문제는 '추가 공모'였다. 당초 거래소는 지난 4일까지 지원을 받고 14일 서류심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12일 유례없는 추가 공모를 냈다.

거래소 이사후보추천위원회는 "인재풀을 확대하고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으나 모두가 뒷배경에 의구심을 품었다. 이미 금융권에서는 '장하성 라인'의 김광수 전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을 유력 후보로 꼽은 상황였다.

이런 가운데 인선 완주를 선언했던 김 전 원장이 돌연 지원을 철회하는 동시에 2차 공모 지원자 명단에 문재인 캠프 출신의 김성진 전 조달청장과 정지원 한국증권금융 사장이 이름을 올리자 논란은 증폭됐다.

김 전 원장과 김 전 청장의 2파전으로 흐르던 신경전이 하루 새 김 전 청장과 정 사장의 경합으로 바뀌면서 김 전 원장이 청와대와 대선캠프 간 알력 싸움에 '밀려났다'는 소문도 퍼졌다. 게다가 하마평에 오르지도 않았던 정 사장의 지원 소식에 또 다시 '내정설'이 떠돌았다.

이미 공정성 시비 차단을 위해 다른 후보들을 들러리 세운다는 설부터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인맥으로 분류되는 김 전 원장을 견제하기 위해 청와대를 비롯한 여권 내부에서 추가 공모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까지 온갖 추측이 난무했던 터라, 결국 이사장 인사가 재차 정치권 '낙하산 인사'로 귀결되고 있다는 날선 비판도 거세게 일었다.

1차 공모 당시만 해도 거래소가 이번만큼은 전문성을 갖춘 순수 혈통의 내부 출신을 선임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고 모두가 기대했다. 정부 지분이 전혀 없는 엄연한 민간기업인 거래소의 수장자리에 매번 관료 출신이 앉으면서 낙하산 논란을 되풀이했고, '친박(친 박근혜)' 인사로 꼽히는 정찬우 이사장의 이번 중도 퇴진이 거래소의 '관치' 꼬리표를 떼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이번 인사도 우려했던 과정을 그대로 밟고 있다. 거래소 이사장은 주주총회를 거쳐 금융위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최종 임명해 정권의 입김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거래소는 연간 2경4500억원의 증권·파생 상품을 거래하고 2161개 상장기업을 관리하는 자본시장의 주체다. 따라서 거래소 수장은 그 누구보다 막중한 책임감과 사명감, 전문성을 요구받는다.  하지만 선정 과정부터 이사장의 자격 또는 자질이 아닌 소위 정권의 실세에 초점을 맞추면서 매번 관치금융의 폐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번 이사장 인사 역시 낙하산 관행을 단호히 끊어내지 않는다면 과거 실패 사례를 언제고 다시 반복할 수밖에 없다. 거래소가 정권의 권력화를 위해 관치를 남용한다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관치 사슬을 끊고 이제라도 철저한 검증 단계를 거쳐 전문성을 가진 수장을 배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