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기관영업, 승자없는 '출혈경쟁'…무엇이 문제인가
은행권 기관영업, 승자없는 '출혈경쟁'…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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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 사진=서울파이낸스DB

우리銀의 전리품 국민연금 주거래銀 '빛좋은 개살구'?
신한銀 절대강자 입지 '흔들'…수탁銀 선정 '혈투' 예고
개인영업 위축·단기 성과주의, 기관 '과도한 요구'도 문제

[서울파이낸스 은행팀] 지난 16일 결판난 국민연금 주거래은행 선정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이날 이뤄진 공개 경쟁 입찰 제안서 발표회에는 이광구 우리은행장과 위성호 신한은행장,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이 직접 참석해 긴장감을 높였다. 마침내 두껑이 열렸고 국민연금은 주거래은행 우선협상자로 우리은행을 선정했다. 이로써 우리은행은 내년 3월부터 3년 간, 이후 최대 2년까지 연장이 가능한 국민연금 주거래은행의 입지를 누리게 됐다. 반면 2007년 이후 주거래은행 자리를 놓친 적이 없는 신한은행에겐 아픈 상처로 남게 됐다.

그런데 승부가 난 이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우리은행은 엄청난 성과에도 기뻐하는 기색이 예전같지 않다. 신한은행도 기분은 나쁠지언정 미련없다는 식의 반응이다. 총 600조원의 자금을 지닌 국민연금의 주거래은행 자리를 주고받았는데. 왜 그럴까?

주거래은행이 갖는 역할이 첫 번째 요인으로 지목된다. 국민연금의 주거래은행으로 지정되면 마치 600조원의 자금을 모두 유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인데, 국민연금의 자금은 채권, 주식, 해외투자 등으로 분산돼 있어 주거래은행이 누릴 수혜(예치 자금)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거기다 유치과정에서 예금금리를 더 얹어 주기로 한 것은 불문가지일터이니 밥그릇은 더 쪼그라들 수 밖에 없다.

또 하나. 우리은행이 국민연금 주거래은행을 맡게되면서 치뤄야할 막대한 비용이다. 우리은행이 국민연금 주거래은행 계약을 따낸 결정적인 요인은 1000억원 규모의 전산 인프라 투자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은행은 주거래 은행 변경에 따라 신한은행이 구축했던 전산 인프라를 교체해야 하는 상황. 당장 우리은행이 내년3월 주거래은행 업무 개시전까지 전산인프라 구축에 투입해야할 비용만 5백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경쟁에 참여했던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국민연금 주거래은행으로서 갖는 수익보다 뱅킹시스템에 투자하는 비용이 더 클 것"이라며 "실익은 크지 않은 계약"이라고 말했다.

지난 8월 있었던 경찰공무원 고객예치건도 상황은 비슷했다. 신한은행이 직접 설계한 14만 경찰공무원 참수리 대출 사업권을 KB국민은행에게 내주고 말았는데, 당시에도 KB의 공격적 영업을 놓고 뒷말이 무성했다. 참수리 대출은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이 은행 리테일 부행장 재직 당시 설계한 상품. KB국민은행이 최저 1%대의 낮은 금리에 더해 파격적인 카드 혜택을 제공하면서 사업권을 따냈고 명칭을 무궁화 대출로 바꿨다. KB금융은 계약에 따라 카드 매출액의 일부를 경찰공제회의 출연금으로 적립해야 한다. 당시 해당업무를 주도했던 허인 영업담당 부행장은 우연인지, 그 공로를 인정받은 탓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아무튼 현재 국민은행장으로 영전했다. 한 은행 관계자는 "해당 계약을 두고 경영진의 연임을 포석에 둔 무리한 시도라는 얘기가 많았다"며 "무궁화 대출의 경우에는 오히려 카드 부문에서는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사업"이라고 꼬집었다.

은행이라면 결코 물러설 수 없는 두 번의 빅매치. 하지만 전리품을 놓고 '빛좋은 개살구'니 '계륵'이라는 평가와 함께 승자는 이기고도 '무리수를 둔 것 아니냐'는 불편한 소리를 듣고 있다.

그런데도 은행의 과도한 기관영업경쟁이 재연되는 까닭은 뭘까? 은행 영업환경 변화와 경쟁구도간의 연관성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은행별 실적으로만 보면 KB국민은행 뿐만 아니라 우리은행의 경상 이익규모도 신한은행을 바짝 따라붙은 상황이다. 리딩뱅크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것이다. 반면, 이미 임계치를 넘어선 14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와 과열된 부동산 시장으로 가계대출 영업에 제동이 걸린 상황이다. 때문에 은행권의 기관 영업 치중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고 앞으로도 혈투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은행 경영의 폐단으로 고착화되다 시피한 단기성과주의도 한 몫하고 있다.

당장 이달 말로 예정된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채권, 대체투자, 사무관리를 담당할 수탁은행 선정이 주목된다. 앞서 지적됐듯이 국민연금은 주거래은행보다 수탁은행이 더 큰 실속을 챙길 수도 있는 구조다. 주거래은행은 껍데기고 수탁은행이 알짜라는 말이 들릴 정도인데, 피튀는 경쟁이 또 한번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국민연금은 올 3월 기준 주식 111조7618억원, 채권 281조1958억원, 대체투자 21조6116억원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경쟁은행들은 실익을 구실로 표정관리를 하고 있지만, 리딩뱅크 구도 자체가 경합을 벌이는 상황에서 영업 경쟁에서 밀리는 게 달가울리 없지 않느냐"면서 "은행 마다 기관영업 부서의 긴장감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무리수인줄 알면서고 벌어지고 있는 기관영업을 둘러싼 은행들의 제살깎기식 출혈경쟁. 큰 틀에서보면, 그 절박감 만큼이나 변화와 함께 절제력이 요구되는 싯점이다. 자칫 강남 재건축 아파트를 둘러싼 건설사들의 니전투구와 같은 수주전 양상으로 치달을까 우려되기 때문이다. 기관들의 갑질을 연상시키는 듯한 은행에 대한 지나친 요구도 간과할 수 문제점이라는 게 은행 안팎의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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