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2017년 패션·뷰티업계는 표정이 엇갈렸다. 화장품 회사들은 지난해까지 중국인 소비자들을 등에 업고 실적 상승세를 탔지만, 올해 중국 정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울상을 지었다. 반면 패션업계는 간만에 화색이 돌았다. 식품회사와 손잡고 선보인 제품이 '대박'을 터뜨린데다 '롱패딩' 열풍이 더해지면서 지갑이 두툼해졌다.
◇ '사드 리스크'로 어두워진 화장품 브랜드숍
올해 화장품 회사들은 한반도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 보복'으로 저조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화장품은 중국인 소비자들에게 한국 여행 시 필수 쇼핑 품목으로 꼽힌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한국 단체여행을 금지하면서 '큰 손'인 중국인 관광객들이 자취를 감췄고, 브랜드숍 성장세가 주춤했다.
국내 화장품 업계 쌍두마차 격인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도 사드 영향을 피할 수 없었다. 아모레퍼시픽 영업이익은 3분기 연속 뒷걸음질 쳤고, 2분기에는 반 토막이 나기도 했다. 면세 채널 부진과 관광 상권 매장 위축으로 인력과 브랜드, 고객 경험에 대한 투자가 늘었기 때문이다. 매 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해온 LG생활건강도 '중국 관광객 급감' 여파에 2분기 매출액이 소폭 줄었다.
중국은 한국산 화장품 수입을 대거 불허했다. 중국 질량감독검험검역총국은 법규 위반을 이유로 들었지만, 국내 화장품 업계에서는 기준이 이전보다 한층 까다로워졌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에 화장품 회사들은 '중국 쏠림' 현상에서 벗어나 새 시장 개척에 나섰다.
◇ 아모레퍼시픽 다시 '용산 시대'
아모레퍼시픽이 '용산 시대'를 다시 열었다. 1945년 개성에서 창업한 고 서성환 아모레퍼시픽 선대회장이 1956년 서울 용산구 한강로에서 사업 기틀을 마련한 지 61년 만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용산 귀향이 '원대한 기업(Great Company)'의 중요한 구심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서성환 선대회장이 처음 용산에 둥지를 틀 당시 'ABC 포마드'가 우수한 품질로 '전국 국산품 인기투표 대회' 부통령 상을 받은 것처럼, '신 용산 시대' 세계 시장에서 인정을 받겠다는 포부다.
신 본사의 핵심 키워드는 '연결'이다. 소비자와 임직원뿐 아니라 자연, 도시, 지역사회가 모두 교감하고 소통하는 장소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것이다. 건물 곳곳에도 소통 공간이 마련됐다. 문화 공간 '아트리움'을 비롯해 자연과 호흡할 수 있는 세 개의 정원 '루프 가든'이 조성됐다.
◇ '3300원 화장품 신화' 서영필, 미샤 매각
서영필 에이블씨엔씨 회장이 4월21일 투자회사 비너스원에 1882억원 규모 보유 주식을 양도했다. 비너스원은 사모펀드 IMM컨소시엄이 에이블씨엔씨 지분 인수를 위해 세운 투자회사다. 수장이 바뀐 에이블씨엔씨는 내년부터 2019년까지 총 2289억원을 투자해 미샤 경쟁력 강화에 나선다. 미샤와 어퓨 점포는 기존 700여개에서 900개까지 늘리고, 중국 1성급 도시 내 30여개의 직영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 예정이다.
서영필 회장은 1세대 화장품 브랜드숍 미샤를 창업한 인물이다. '33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의 화장품을 선보이며 소비자들 이목을 사로잡았다. 서 회장의 지분 매각 배경으로 화장품 로드숍 경쟁 심화와 매출 정체가 거론된다.
◇ 얇아진 지갑에…'대용량' 화장품 인기
불황에 실속을 강조한 대용량 화장품이 인기를 끌었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에 이어 '가용비(가격 대비 용량)'가 새로운 소비 형태로 떠오른 것이다. 과거엔 주로 저가 브랜드 대용량 제품이 출시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고가 브랜드에서도 용량을 늘린 제품이 나오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한방 화장품 브랜드 설화수에서도 용량을 기존(200mL)보다 2배 늘린 '순행클렌징오일'과 '순행클렌징폼'이 나왔다. 배로 늘린 용량에 견줬을 때 가격은 30%가량 저렴하다. LG생활건강 역시 중·저가 브랜드 빌리프에 이어 라끄베르와 이자녹스를 통해 잇달아 대용량 제품을 선보였다. LG생활건강 '라끄베르 딥 앤 모이스트 더블액션' 가운데 클렌징폼과 오일, 클렌징워터가 대용량이다.
◇ '군살' 빼고 숨통 트인 패션가
국내 패션업체들이 군살을 빼면서 실적 개선에 성공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과 LF(옛 엘지패션)는 실적이 안 좋은 사업을 정리하면서 수익성을 높였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남성복 브랜드 '엠비오'와 패션 잡화 브랜드 '라베노바' 사업을 접고 '로가디스' 브랜드를 통합하면서 2분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LF는 여성 캐주얼 브랜드 '질바이질스튜어트'와 남성복 브랜드 '일꼬르소' 매장을 줄였다. 남성 정장 브랜드 '타운젠트' 영업도 중단했다. 몸집을 줄이면서 영업이익은 6분기 연속으로 늘었다. 패션 부문 매출액도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 성장하며 1년여 만에 회복 조짐을 보였다.
반면 이랜드그룹의 모회사로서 패션 부문을 영위하는 사업형 지주회사 이랜드월드는 외형과 내실을 모두 놓쳤다. 그러나 연내 부채비율을 200% 미만으로 낮춘다는 목표에 가까워졌다. 2013년 399%에 육박했던 부채비율을 의류 브랜드 '티니위니', 홈·리빙 사업부 '모던하우스' 매각으로 2분기 254%까지 낮췄다.
◇ 롱패딩 열풍에 패션가 '함박웃음'
'롱패딩'으로 패션업체들이 모처럼 함박웃음을 지었다. 스타 마케팅 성공에 '평창 롱패딩' 열풍까지 불었다. 특히 롱패딩이 매출 효자 노릇을 했다. 일명 '류준열 롱패딩'으로 불리는 신성통상의 탑텐 폴라리스 롱패딩은 하루에 1000장 넘게 팔렸다. 아웃도어 업체 K2의 '수지 패딩(아그네스패딩)' 역시 40만원을 넘는 가격에도 일찍이 품절됐다.
아웃도어 업체 블랙야크가 출시한 '야크벤치다운재킷'과 '롯지벤치패딩재킷'도 70% 이상의 판매율을 기록하며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뉴발란스는 11월 한 달간 다운 제품 판매가 크게 늘어 월 매출 71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뉴발란스의 한국 시장 진출 이후 역대 최고 수준이다.
◇ 사업 다각화 속도 내는 LF
LF가 사업 다각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올해 초 주류 유통 기업 '인덜지' 지분의 절반 이상을 확보한 데 이어 토종 수제버거 브랜드 '크라제버거' 상표권까지 인수했다. 패션 사업에 주력했던 LF는 2007년 LF푸드를 자회사로 설립하면서 외식 사업에 진출했다. 지난해 화장품 유통을 시작했고, 침구류 라이센스권도 확보하며 소비자와 접촉점을 넓혔다.
◇ 휠라 '젊은' 이미지로 실적 개선 성공
휠라코리아가 '복고 열풍'에 힘입어 실적 개선에 성공했다. 1990년대 로고를 재해석한 '헤리티지(Heritage·브랜드 자산)' 콘셉트로 출시한 운동화 '코트디럭스'가 인기를 끌면서 매출을 견인했다.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에 밀려 매출 하락과 함께 지난해 310억원 영업 손실을 보기도 했지만, 올해 1분기 매출이 3년 만에 처음 증가하면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았다. 지난해 9월 출시한 코트디럭스는 11월 중순까지 80만켤레가 팔렸다. 식품업체 빙그레와 손잡고 선보인 '코트디럭스 메로나' 운동화도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 '케미포비아' 부른 생리대 파동
시민단체 여성환경연대가 일회용 생리대의 유해성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여성 소비자들이 케미포비아(화학물질 공포증)에 휩싸였다. 여성환경연대는 김만구 강원대 교수 연구팀에 일회용 생리대의 유해성 연구를 의뢰했으며, '유명 일회용 생리대 11개 제품에서 독성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실험 제품에 깨끗한나라 '릴리안'이 포함된 것이 알려지고, 소비자들이 부작용을 토로하자 회사는 모든 제품 생산을 중단하고 환불 조치에 들어갔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논란이 된 휘발성유기화합물을 포함한 생리대 성분의 유해성을 전반적으로 시험해 매달 7일간, 하루에 7.5개씩 평생 사용하더라도 인체에 해롭지 않다는 결과를 내놨다. 그러나 식약처 시험 결과를 믿을 수 없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어 논란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소비자들은 일회용 생리대 대안으로 '면 생리대'와 '생리컵'을 찾기도 했다.
◇ '가습기살균제 참사' 정부 첫 공식사과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 참사' 발생 6년 만에 처음 공식 사과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6월5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 관련 지원 확대 대책을 주문한 데 이어 8월8일 청와대로 피해자와 가족을 초청해 위로하고, 정부 차원의 책임을 인정했다. 문 대통령은 19대 대선 후보 시절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인재'로 규정하고, 피해에 대한 국가 책임 인정과 사과를 공약한 바 있다.
피해자들은 역대 정부와 다른 적극적인 모습에 기대감을 표하며, 등급제 개선이 이뤄질지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피해 등급제' 완화나 폐지를 주장했다. 건강 피해 정도 1~4단계 가운데 3·4등급 판정자는 피해자로 인정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12월19일에는 공정거래위원회 '가습기 살균제 사건처리 평가 태스크포스(TF)'가 지난해 사건 처리 절차에 잘못이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 업체 SK케미칼과 애경산업에 대한 재조사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최근 두 회사에 대한 검찰 고발과 과징금 여부를 다시 판단하기 위해 심사 보고서(검찰의 공소장에 해당)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