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요자 잡는 '재건축 환수제'…갈등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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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재건축 단지의 예상 부담금을 공개하자, 조합원들의 반발이 심해지고 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사진=이진희 기자)

호가 낮춘 매물에도 매수자 '관망세' 돌아서
서울 강남권 재건축 단지 "집단 소송 준비"

[서울파이낸스 이진희 기자] 정부가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부담금 예상금액을 공개한 이후, 업계에선 충격이 좀처럼 가시질 않고 있다.

웬만한 집 한 채 값을 부담금으로 내야하는 처지에 놓이자 몇몇 재건축 조합은 재건축 사업을 보류하거나 정부를 상대로 위헌 소송 움직임을 본격화하는 분위기다. 특히 오래 전부터 살아온 실거주자에게도 일률적으로 높은 부담금이 부과되면서 '형평성' 논란이 거세다.

지난 21일 국토교통부는 서울 소재 20개 단지의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예상 부담금을 공개했다. 이 중 서울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 15개 단지의 조합원 1인당 부담금은 평균 4억3900만원에서 최고 8억4000만원이 될 것으로 국토부는 추산했다.

구체적인 단지명이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업계는 재건축 단지 중 대장주로 불리는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3주구, 강남구 은마아파트 등이 고가 부담금의 주인공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재건축 부담금은 추진위원회 구성 후 재건축 사업이 끝날 때까지 오른 집값 중 개발비용과 해당 지역 평균 집값 상승분을 뺀 금액에서 최저 10%, 최대 50%까지 환수하는 방식이다.

예상 부담금이 발표된 후 재건축 시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각 단지 재건축 조합은 준공 후 아파트 시세가 크게 오를 것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부담금이 최대 3억~4억원 수준일 것으로 추산했던 터라, 예상치의 배를 웃도는 금액이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반포주공1단지 3주구의 인근에 위치한 B공인중개업소 사장은 "지난 일요일 이후 부담금이 얼마일 것 같냐는 문의전화가 쉴 틈 없이 오는 탓에 몸살을 앓을 판"이라면서 "다들 예상보다 높게 추산된 환수금에 어이없어하고 있다"고 말했다.

품귀 현상을 빚었던 매물도 하나둘씩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매수자들은 "좀 더 지켜보자"며 관망세로 돌아선 반면, 집주인들은 매수자의 반응을 살펴보기 위해 호가를 낮춰 매물을 내놓는 분위기다.

압구정동의 J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어제는 몇몇 집주인이 호가를 좀 낮춰 매도의사를 밝혔다"며 "부담금이 부담스러운 실거주자들도 있고, 시장 분위기를 살피려고 값을 일부러 낮춰서 내놓은 사람도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정부의 이번 재건축 부담금 공개의 여파가 더욱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이익에 대한 부과금이라는 점에서 반발이 심한 데다 투기수요가 아닌 실수요자에겐 너무 무리한 처사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어서다.

부담금은 지자체가 재건축 조합에 총 금액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아파트 구입 시기와 조합원이 얻은 시세차익 규모가 감안되지 않는다. 시세차익을 얻지 않은 실거주자도 수억원의 부담금을 내야하는 셈이다.

부담금이 발표되고 줄곧 이어지고 있는 문의 전화도 대부분이 수십 년 노후 아파트에 살고 있는 주민이라는 게 중개업자들의 얘기다.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인근 S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돈 있는 사람들이야 버티면 되기 때문에 크게 동요하지는 않지만, 현금 마련이 어려운 고령의 장기 거주자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면서 "소송까지 불사하겠다는 조합원들이 많다"고 전했다.

실제 강남권 재건축 단지들은 집단 소송을 준비 중이다. 잠실주공5단지는 지난해 말부터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위헌 관련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반포와 대치동의 재건축 조합도 소송 참여 의사를 보이고 있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부담금이 웬만한 아파트나 빌라 한 채의 가격인 만큼 대기하고 있던 매수자들의 심리가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의 규제 시그널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강남권 재건축 시장도 숨을 고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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