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스타트업과 숟가락부대
[전문가 기고] 스타트업과 숟가락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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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세현 전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 글로벌팀장

A라는 스타트업이 요즘 잘 나간다. 개발한 기술이 세계 최초이기도 할 뿐만 아니라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그런 '허접한' 기술이 아닌 정말 고난도의 기술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A사에게는 국내에서도 투자가 잘 이뤄지고 심지어 해외에서도 러브콜이 끊이지를 않는다. 단순히 투자만 받는 게 아니라 유료 고객들도 속속 생겨나서 '업무협약'이 아닌 ‘유료 계약’을 꾸준히 체결한다. 그 결과 매출이 늘고 시장성이 증명되었고 이에 따라 입소문이 퍼져 꾸준히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여기저기 스타트업 지원 공공기관들에게도 연락이 꾸준히 온다. 입소문을 듣고 지원해주기 위해서 연락이 오는 것이라고 생각해 달가웠는데 막상 연락을 받아보니 다소 의아스럽다. A사가 최근 맺은 계약을 담당 기관에서 신문기사로 내주겠다는 건데 홍보도 되고 좋지 않느냐는 것이다. 대신 본 공공기관이 지원해 일군 성과로 포장하여 기사를 내자는 것이다. 이쯤 되면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내볼까 하는 생각은 한다. 어쨌든 홍보효과는 분명 있을 테니 말이다.

또 다른 공공기관에서 연락이 온다. 자신들의 공공기관 입주기업 내지 멤버기업으로 이름을 올리자는 것이다. 그래서 A사는 이미 다른 공공기관에 수혜스타트업으로 등록돼 있어서 곤란하지 않냐고 거절을 해본다. 공공기관에서는 괜찮다고 한다. 그렇게 해당 공공기관에도 또 지원받는 기업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예전에 잠시 알게 돼 1회 지원을 받은 바 있는 또 다른 공공기관에서 갑자기 연락이 온다. 최근 해외에서 계약 맺은 소식을 들었다고 하면서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자신들의 성과로 잡아도 되겠냐고 한다. 그러자 A스타트업 대표는 "전에 보태주신 지원은 잘 받았지만 금번 해외 계약건은 제가 독자적으로 해낸 거지 어떤 기관으로부터도 도움을 받아 일군 성과가 아니"라고 거절한다. 그렇지만 뭔가 마음이 편치는 않다. 훗날 혹시라도 지원받을 때 불이익을 받지나 않을지 걱정도 된다. 이쯤 되고 보니 좀 잘나간다 싶은 스타트업들은 여러 군데 공공기관들이 자신들이 키웠다고 대충 뭉개서 얘기들 한다.

이런 공공기관들을 우스갯소리로 '숟가락부대'라고 조롱삼아 일컫고는 한다. 이유는 스타트업이 정말 필요로 하는 지원들은 못 받다가 혼자 힘으로 꾸역꾸역 힘들게 차려놓은 밥상에 갑자기 달려와서 그 밥상 위에 숟가락을 얹어놓고는 우리가 같이 차린 거라고 우기면서 성과가 가져가려고 하기 때문에 숟가락부대라고 조소하는 것이다. 씁쓸한 대목이다.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것은 손이 많이 가고 쉽지 않은 일이다. 일단 단계별로 다르겠지만 대체로 스타트업들은 인력 구성 면에서 약하고 불안정하며 자원이 부족해 지원을 해줘도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지기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1회성 이벤트 참가비용 정도 대주는 것 외에는 정말 제대로 지원해주기가 쉽지 않다. 물론 공공기관이 성심성의껏 지원해주기도 만만치는 않다. 기본적으로 공공기관에서는 ‘주인정신’을 갖고 일하기가 쉽지 않고(아무도 알아주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1억원을 받아 5억원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아닌 1억 예산을 최대한 빨리 소진해야 사업 잘한다는 말을 듣는 조직이다 보니 제대로 된 스타트업을 선별해서 지원하기보다는 예산 소진에 급급할 수밖에 없다. 그런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다보니 옥석구별도 제대로 않고 지원해놓고 보기 일쑤며 더욱이 성과를 보채는 상급 기관들 때문에 가시적이고 멋져 보이는 성과를 억지로 만들어내려고 하다 보니 숟가락부대로 전락하게 되는 거다.

이런 공공기관들도 문제지만 이들에게 예산을 주는 상급 정부기관들도 문제가 있다. 보챌 걸 보채야하는데 억지로 만들어내려고 하니까 이런 탈이 생긴다. 이 때문에 정부나 공공기관들이 스타트업 지원에 지나치게 간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는 의견들이 나오는 것이다. 왜냐하면 시장에서 살아남을 만한 가치가 있는 기업과 시장성이 전혀 없어 도태돼야 하는 기업까지 혈세로 생존시키고 있다 보니 거품이 생길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소위 말하는 '좀비스타트업'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이런 신기루현상은 지원금이 더욱 많이 풀릴수록 지속된다. 언뜻 봐서는 뭔가 스타트업 생태계가 성장하고 성숙해져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장왜곡만 더욱 가속화될 뿐이다. 좀비기업들에게 혈세가 투입되면서 마치 일자리도 창출하는 것처럼 보이고 잘 돼가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결국 나중에 다 터져버릴 거품인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더욱 많은 돈을 푼다고 할 때마다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 따라서 손쉬운 금융지원이나 속빈 강정 같은 지원은 지양하고 최대한 기업에 꼭 맞는, 장기적 안목을 갖고 조성해나가는 스타트업 생태계가 너무 절실하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처럼 하나마나한 업무협약만 맺고 스타트업 단독으로 일군 성과를 마치 자신들의 것인 양 치장하며 악수하고 기념사진 함께 찍고 홍보성 기사 나가는 공해만 잔뜩 심화될 것이다. 이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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