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김희정 기자] '진퇴양난'에 빠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투자·수출·고용 등 경제 전반이 침체로 빠져드는 상황이지만 금융불균형 확대에 따른 금융안정 필요성이 더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금리인상 타이밍을 놓쳤다는 '금리 실기론'이 제기돼 기준금리 인상과 동결 중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럴 바엔 한 차례라도 금리를 올려 통화정책 공간을 마련해 놓겠다는 속내도 읽힌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30일 오전 서울 중구 한은 삼성 본관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이달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연 1.50%에서 1.75%로 0.25%p 상향조정했다. 지난해 11월 기준금리를 연 1.25%에서 1.50%로 6년 5개월만에 인상한 이후 정확히 1년 만이다.
금융권은 이번 기준금리 상향조정의 주된 근거를 금융불균형 해소에서 찾는다. 금융불균형 누증이 저금리에 따른 가계부채 증가, 부동산시장으로의 과도한 자금 쏠림 등을 의미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금리를 올려 가계에 부채관리를 강화하라는 시그널을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지난 3분기 기준 가계대출은 1514조4000억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1500조원을 돌파했다. 산술상 경제활동인구 1인당 가계빚이 5400만원에 육박한다는 의미다. 정부의 전 방위적 가계대출 옥죄기로 대출 증가세는 전년동기 대비 6.7%로 둔화됐지만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명목 처분가능소득 증가율 4.5%(2017년 기준)를 여전히 웃돌고 있다.
저금리 부작용이 커지며 정부는 한은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지난해부터 불거진 부동산 값 급등 현상에 저금리로 방관한 한은도 책임이 있기 때문에 금리를 올려 부동산 수요를 끌어내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은의 독립성을 훼손시킬 수 있다는 쓴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이낙연 국무총리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정부·여당 핵심인사들이 금리인상 필요성을 직·간접적으로 피력한 이유다.
이주열 총재는 전체회의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금리인상이 금융불균형을 완화할 것이란 기대를 나타냈다. 이 총재는 "기준금리가 소폭이긴 하지만 조정이 이뤄져 금융안정 측면서는 이 모든 효과가 복합 작용할 것으로 본다"며 "금융불균형을 축소하는 데 금리인상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거시건전성 정책강화와 주택시장 안정대책, 금리인상 등 복합적 요인이 금융안정에 작용한다"고 부연했다.
문제는 지금까지 나온 경제지표가 어느 것 하나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데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 등으로 대외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지난달 한은은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9%에서 2.7%,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9%에서 1.7%로 각각 하향조정했지만 이마저도 낙관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미 해외 투자은행(IB)들은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을 줄줄이 낮춰잡고 있다. 일부에서는 2.5% 아래로 내다보는 기관도 적지 않다. 통상 경기 하강국면에서는 한은이 돈줄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는 것이 정석인데, 이번에 되레 금리를 인상해 버린 것이다.
윤여삼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최근 서울 아파트 가격이 전주대비 마이너스(-)로 돌아선데다 가계부채 증가속도 또한 둔화세를 나타내고 있다"며 "큰 폭으로 하락한 주식시장만 감안해도 사실 이달 금리인상을 실행하는 것이 맞는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금통위 내 '비둘기(통화 완화 선호)'파로 꼽히는 신인석·조동철 금통위원에 의해 금리동결 소수의견이 제기된 점을 보면 이런 지적들을 의식했다는 인상을 준다. 금통위는 통화정책방향문을 통해서도 향후 완화기조를 이어간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금통위는 "국내경제가 잠재성장률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성장세를 지속하는 가운데 당분간 수요 측면에서의 물가상승압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므로 통화정책의 완화기조를 유지해 나갈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이번달 금리인상이 통화 완화 정도를 조정한 것이지 지속적인 금리인상을 시사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금융권에서는 내년에는 더 인상하기 어려운 환경이 전개될 것임을 감안해 이번 금리인상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이 총재는 금리인상 깜빡이를 여러번 켰다. 올해 마지막 금통위가 열리는 이달 금리를 동결하면 시장에 더 큰 혼란을 줄 수 있어 선택의 여지도 적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올해 중순부터 금리 실기론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는 가운데 한은은 금리를 동결해도 비난을 감수해야 할 처지"라며 "그렇다면 본격적인 경기 하강에 대비해 정책 여력 확보 차원에서 금리를 올려두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말했다.
시장의 관심은 내년 추가 금리인상 여부에 쏠려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경기둔화에 따른 금리동결과 한미 금리차 확대에 따른 자본유출 우려로 1차례 금리인상이 단행될 것이란 전망이 혼재한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다음달 기준금리 인상에 더해 내년 3차례 추가 인상을 피력했다. 최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금리인상 속도조절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어느정도 부담은 덜었지만,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는 1%p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다.
변수는 역시나 가계부채다. 금리인상이 가계부채 증가세는 진정시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미 대출을 받은 사람들에겐 이자상환 압박이 커질 수 있다. 한은은 대출 금리가 0.25%p 올라갈 경우 가계의 이자 부담이 2조3000억원가량 증가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