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윤은식 기자] 문재인 정부의 친(親) 기업 정책 변화의 바람은 공정거래위원회 수장이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 설립 49년 만에 처음으로 경총을 찾게 했다.
집권 초기만 해도 재벌개혁의 칼을 빼 들고 강한 개혁을 외친 문재인 정부였다. 그 선봉장에 '재계 저승사자'로 불리는 김상조 당시 한성대 교수를 공정거래위원장으로 내정하고 재벌개혁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하지만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경제성장과 특히 청년 취업난 등으로 문 정부의 재벌정책은 추진력을 잃었다. 그러면서 시장 친화적 인물로 알려진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경제사령탑에 오르면서 기업투자 활성화로 경제살리기가 화두에 올랐다.
김 위원장이 21일 경총을 방문한 것도 문 정부가 재벌개혁에서 기업 친화 정책 방향으로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경총을 찾아 손경식 회장과 만나 공정위가 추진하는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안과 관련해 "공정위가 기업 발전의 뒷받침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앞으로 자주 찾아뵙고 의견을 경청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의 전부가 기업의 부담을 주는 내용이 아니라 오히려 기업에 도움을 주고 혁신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내용이 있다'고 설명하자 손 회장도 이해를 표했다"며 "하위 법령을 준비하면서 기업인들의 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있는 구체적 내용을 정할 것이며 재계와 협의하겠다고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손 회장은 "모처럼 오셨다. 우리 경제에서 중요한 위치에 계시니깐 공정위뿐만 아니라 다른 문제도 같이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 중 전속고발권 폐지, 사익편취 규제 대상 확대, 정보교환 행위 규제 조항 등에 대한 경영계의 우려를 전달했다.
김 위원장은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형벌조항 정비를 포함해 여러 부분에 대해 손 회장이 긍정적으로 평가해줬다"며 "국회에서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안이 잘 논의될 수 있도록 부탁드렸다"고 말했다.
최근 경총은 전문분야인 노사문제 이외에도 기업지배구조,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경제계 입장 대변, 전속고발권 폐지 등 강도 높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손 회장은 김 위원장과 만남에 앞서 최저임금과 탄력근무제 등 의견을 전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위원장은 "경총이 손 회장 취임 후 노사관계뿐만 아니라 정부의 다른 정책에 대해서도 재계를 대표하는 어른 역할을 한다"며 경총을 사실상 재계의 맏형으로 인정했다.
정부가 국정농단 사태 이후 재벌기업과 함께 전국경제인연합 등 경제이익 단체를 적폐청산, 개혁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대화 채널을 닫은 이후 경총을 재계를 대변하는 새로운 대화상대로 인정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편 이날 오전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 8층 회의실에서 열린 간담회에는 김 위원장과 손 회장을 비롯해 김재신 공정위 경쟁정책국장, 김용근 경총 상근 부회장, 류기정 경총 전무 등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