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박시형 기자] "단순히 성과급 문제만 있었다면 이렇게 많이 모이지 못했을 겁니다. 직원들의 자존심이 달린 문제예요."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KB국민은행지부는 8일 서울 잠실 학생체육관에서 약 1만명이 참석한 총파업을 진행했다. KB국민은행 직원 상당수는 전날 전야제부터 참석해 이틀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총파업 시작을 10여분 앞둔 8시 50분 박홍배 KB국민은행 노조 위원장은 총파업을 선포하고 본격적인 쟁의활동에 나섰다.
박 위원장은 대회사를 통해 "지난 한 해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 지부들을 온 국민 앞에 돈 때문에 파업하는 파렴치한으로 몰아세웠다"며 "지난 1~2주간 사측은 KB국민은행의 미래를 좀먹고 직원들마저 공멸에 이르게 할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민은행 노조는 성과급에 대해 먼저 제안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초 허인 KB국민은행장은 '최고의 실적에 걸맞은 최고의 보상'을 약속한 바 있다. 그런데 12월이 되자 경영목표 달성이 어려우니 경영성과급을 지급할 수 없다며 입장을 바꿨다. 이후 70%, 150%, 200%, 300% 등 수차례 협상안을 제시했다.
이와 동시에 사측은 언론을 통해 '귀족노조' 프레임을 만들어 고소득자가 더 가지려 한다는 식의 논리를 전개했다고 국민은행 노조는 주장했다.
허인 행장이 마지막에 제시한 성과급 300% 안건은 150%는 우리사주로, 100%는 현금, 50%는 시간외 수당 등으로 구성됐다. 노조는 사측의 제안에 개입해 비율을 조정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만약 처음부터 200%를 제안했으면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을 것이란 입장도 분명히 했다.
파업에 참여한 A씨는 "성과급에 대해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있던 직원들을 부추겼던 것은 오히려 사측이었다"며 "최근 들어 계속해서 말을 바꾸는 등 직원들을 무시하는 행동을 반복해왔다. 19년 동안 직원들이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았더니 이번에도 어물쩍 넘어가려 했던 것"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그는 이어 "경영진이 반복해서 직원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자 한 번은 힘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 싶어 총파업에 참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국민은행은 지난 2000년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합병을 앞두고 일산연수원에서 일주일에 걸쳐 총파업을 벌인 바 있다.
당시 파업에 참여했던 B씨는 "당시 합병이 정치적인 논리에 의해 진행되자 은행원들은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총파업에 나섰다"며 "이후 오랫동안 잠잠했는데 이번에 직원들이 대규모로 나섰다는 것은 분명 뭔가 잘못됐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페이밴드 제도를 전면적으로 도입하려 하거나 점포장의 실적 기준을 상향해 복귀가 불가능하도록 하는 등 사측의 행동들이 직원들을 생각하기보다 오히려 과도한 실적경쟁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이다.
B씨는 페이밴드 제도는 일정 기간이 지나도 승진하지 못할 경우 임금 인상도 동결한다는 제도다. 이 제도는 승진하지 못한 직원들에 대해 급여 마저 차별을 둬 스스로 회사를 떠나도록 압박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작 페이밴드 제도에 대해 직원들은 제대로 알지 못하다 최근에야 알게 됐다는 입장이다.
C씨는 "바로 옆에서 신입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지만 입사 때 페이밴드 제도에 서명했다는 건 최근에야 알게 됐다"며 "과거 노사 쟁점 사안인 건 알고 있었지만 드러나지 않고 있어 잘 해결된 줄 알았다. 이대로 두면 후배들은 무한 경쟁 체제에서 근무하게 되는데, 이를 막기 위해 총파업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쟁점 사안인 '점포장 후선보임제도'도 페이밴드와 마찬가지로 일정 연령·직급에 도달한 사람들을 내보내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점포장 3년차가 되면 평가대상자 중 20%는 소속 지점 없이 알아서 영업을 해야 한다. 과거에는 영업력이 뛰어나 다시 점포장으로 복귀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사측이 실적 기준을 1.5배 상향해 현업 복귀가 불가능하도록 했다.
박홍배 노조위원장은 "본인 역량이 뛰어나도 현업복귀가 어렵다는 걸 점포장들도 알게 됐고, 대상으로 통보받으면 희망퇴직으로 나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