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급여·복지제도 통합안 찬성 68.4% 가결
조흥·신한은행 합병 당시에도 구조조정 전례
[서울파이낸스 김희정 기자] KEB하나은행이 옛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인사·급여·복지제도 통합을 이끌어냈다. 두 은행이 한 솥밥을 먹은 지 3년4개월 만이다. 가장 민감했던 급여체계가 업계 최고 수준이었던 옛 외환은행으로 맞춰져 상향평준화 됐지만, 아직 축배를 들기엔 섣부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 높은 수준의 급여체계가 정착되려면 인적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관측도 슬쩍 고개를 들고 있어서다.
18일 KEB하나은행 노사에 따르면 전일 진행한 조합원 총투표에서 옛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인사·급여·복지제도 합의안이 찬성 68.4%, 반대 30.9%, 무효 0.7%로 가결됐다. 투표에는 총 조합원 1만48명 가운데 9037명이 참여했다.
KEB하나은행은 지난해 5월 노사간 공동 태스크포스(TFT)를 출범하고 인사제도 통합을 위한 작업을 진행해왔다. 지난해 말 마련된 잠정 통합안은 노조 찬반투표에서 부결됐다. 당시 투표에서는 찬성 47.1% 반대 52.2%를 각각 기록했다. 이후 노사가 재협상에 나서며 의견을 조율한 끝에 최종 통합안을 도출해 낸 것이다.
합의안에 따라 옛 하나은행 4단계, 외환은행 10단계로 나뉜 인사 직급체계는 4단계(관리자-책임자-행원A-행원B)로 통합운영 된다. 두 은행에 있던 복지제도는 유리한 쪽으로 합의를 이뤘다. 핵심이었던 급여체계는 두 은행 모두 현재 급여가 줄어들지 않도록 했다. 옛 하나은행 직원들의 급여가 상대적으로 낮았으나 옛 외환은행 직원의 98% 수준으로 높이는 것으로 합의했다.
금융감독원과 각 은행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합병 전인 2014년 기준 옛 외환은행 직원의 평균 연봉은 8000만원을 기록했다. 옛 하나은행(7300만 원)보다 700만원가량 높았다. 옛 외환은행은 2013년(8920만원)과 2012년(9090만원) 두 해에 걸쳐 은행권 평균 연봉 1위를 찍기도 했다. 통합 후 옛 하나은행 직원의 직무수당을 올리는 등 격차를 좁히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과거 연봉 차이가 여전히 존재해 은행 내부에서 미묘한 기싸움이나 견제가 적지 않았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난 2017년 KEB하나은행의 평균 연봉은 업계에서 가장 높은 9300만원이었다"며 "바뀐 급여체계를 적용하면 올해 KEB하나은행 직원들의 평균 연봉이 1억원을 훌쩍 넘길 수 있다"고 했다. 언뜻 보면 옛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직원 모두에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해법을 찾은 셈이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다. 이 과정에서 향후 희망퇴직 등 구조조정 이슈가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는 쓴소리다. 대내외 경기 둔화 우려와 정부의 전방위적 대출 규제로 녹록지 않은 경영환경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직원 급여체계 상향은 은행들에게 만만치 않은 숙제다. 지난해 금융당국은 청년 채용을 이유로 희망퇴직 확대를 압박한 바 있다. 위태위태한 청년 고용을 감안할 때 올해도 이 같은 기조가 이어질 공산이 크다.
통합 당시 옛 하나은행 직원과 외환은행 직원의 비율이 6대 4였다면 최근 들어 5대 5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옛 하나은행 직원들의 비율이 절반 가량인 것을 고려하면 급여를 끌어올리기 위한 부담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 관계자는 "인수합병(M&A)을 이유로 높은 회사 직원의 연봉을 깎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높은 쪽의 급여로 전 직원을 최대한 맞춰주면서 경영진이 구조조정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이라고 했다. 과거 LG·신한카드, 조흥·신한은행 합병 당시에도 연봉이 높은 쪽으로 급여를 상향평준화하면서 일부 인원에 대한 구조조정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다만 이와 관련 KEB하나은행 노동조합 측은 옛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이 KEB하나은행으로 통합한 이후 얻은 시너지 효과로 급여인상 등 비용부분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KEB하나은행 노조 관계자는 "외국환과 무역·기업금융 분야에 강한 옛 외환은행의 경쟁력이 통합된 KEB하나은행에 귀속됐다"며 "애초에 옛 하나은행이 임금부분 재편을 감당할 수 없었다면 옛 외환은행을 인수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회사측 역시 추가적인 별도의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란 입장을 내놓고 있다. 현재 1만3000여명의 직원 가운데 1500여명이 임금피크제 대상으로 향후 5년간 고임금직은 줄기 때문이란 논리다. 한 관계자는 "임금상승의 비용 이슈로 구조조정이 강화되는 것은 현재로선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원 뱅크의 조직문화를 확고히 하기 위해 노사 상생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앞서 진행한 KEB하나은행 준정년 특별퇴직에서 대상자 337명 중 210명이 신청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임금 약 31개월치에 해당하는 특별퇴직금을 받는다. 출생한 달에 따라 최대 5개월치 임금을 더 받을 수도 있다. 지난해 말 NH농협은행은 600여명, 우리은행은 400여명의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이달 KB국민은행은 600여명, 신한은행은 200여명이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이로써 지난해 말과 올해 초 5대 시중은행의 희망퇴직 규모는 2000여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