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김혜경 기자] 지난해 국내 최고 원자력 전문 연구기관이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분석을 잘못 이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원자력계를 발칵 뒤집어놨다. 경주 방폐장으로 이송된 원자력연구원 폐기물 2600드럼 중 945드럼에서 분석 오류가 발견되는 등 총체적 관리 부실이 여과 없이 드러난 셈이다. 당시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연구원 방폐물만 조사하겠다고 나섰지만 각 발전소에서 경주로 옮겨진 폐기물도 잘못 분석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최근 원전 방폐물에도 동일한 유형의 오류가 발견된다는 기술적 근거가 제시되면서 파장이 예상된다. 중·저준위 관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향후 고준위 안전은 담보할 수 있는지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확실한 대책 마련이 요구되는 가운데 오는 3월 출범 예정인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 2000년도 이후 방폐물 기준 척도인자 도출···"대표성 의문"
현재 방폐장에 저장 가능한 중·저준위방폐물은 드럼에 담겨져 경주로 옮겨진다. '원자력법 시행 규칙 제 98조'에 따라 폐기물 처분을 원하는 기관은 핵종과 농도, 방사능량 등을 인수기관에 제출해야 하고, 규제기관은 방폐장 처분 허용 여부를 결정한다. 드럼 내 핵종 재고량 산정은 원전 관리·운영의 기본으로 방폐물에 포함된 전체 방사성 핵종의 95% 이상을 규명해야 한다.
특히 세슘137, 요오드129, 코발트60 등 13개 핵종과 전알파에 대해서는 방사능 농도도 함께 측정해야 한다. 알파·베타·감마선 등 핵종마다 방출하는 방사선 종류에 따라 콘크리트, 금속 등 차폐 물질과 두께는 물론, 각 핵종의 반감기에 따라 저장 구역과 보관 기관도 달라진다. 이는 작업자 피폭과도 직결되는 사안이다.
핵종 재고량 평가 방법은 파괴·비파괴 혹은 직접 측정·간접 평가로 나뉜다. 직접 측정은 드럼을 모두 개봉해 직접 시료 채취 후 검출이 까다로운 알파와 베타선까지 측정하는 방식으로, 대표적인 파괴 측정 형태인 방사화학분석 등이 있다. 간접 평가는 현실적으로 모든 드럼을 열어보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감마선만 계측기로 측정한 후 '척도인자'를 이용해 알파와 베타선의 비율을 추정하는 방식이다. 현재 원안위가 조사 중인 연구원 폐기물 2600드럼 가운데 1800드럼은 파괴 방식으로, 나머지는 척도인자가 적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각 발전소에서 나온 중·저준위 방폐물의 경우에는 척도인자 방식이 사용된다. 척도인자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알파·베타선 농도 분석을 위한 샘플 데이터가 필요하며 해당 데이터를 얻기 위해서는 각 원전에서 발생한 방폐물에서 시료를 채취해야 한다. 시료 채취와 분석은 원자력연구원에서 담당하고 있으며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은 분석의뢰한 시료에 대한 측정값을 활용한다. 척도인자 개발을 위해 수행된 방사능 분석이 정확한지 여부가 핵심이다.
연구원에서 동일 절차로 알파·베타 분석을 실시했다면 원전 방폐물에는 이번 사태가 전혀 영향이 없는 것일까. 그동안 한수원은 현재 신고된 알파·베타 분석오류는 특정 시점 연구원 폐기물 일부에 국한된 것으로 한수원 척도인자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입장을 표명해왔다.
일각에서 제기된 문제점은 과거 원전 운영 시작부터 발생한 전체 중·저준위를 대상으로 척도인자를 만들어야 하지만 2000년 이후에 발생한 드럼만을 기준으로 척도인자를 개발해 시작부터 대표성이 없었다는 지적이다. 2000년 이전 폐기물 수가 훨씬 많음에도 불구하고 측정을 아예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 소장은 "2000년도 전에는 지금처럼 목재, 금속 물질, 폐수지 등 성분에 따른 구분을 하지 않고 드럼에 집어넣었기 때문에 시료 채취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면서 "현재 과거 방폐물 척도인자도 개발·연구 중에 있지만 최근 드럼에서도 분석 오류가 발견된 상황에서 물질이 한데 섞인 과거 폐기물에는 어떻게 척도인자를 적용할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 원전 방폐물 핵종분석에도 오류 발견···근거는?
연구원 핵종분석 오류 사태 이후 원전 방폐물에도 분석 오류 발생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지난 25일 국내 원자력전문가 30여명으로 구성된 원자력안전연구회 발족식에서는 한수원 척도인자 자료 일부가 공개됐다. 해당 자료에는 2015년 이전 원전 폐기물 가운데 알파핵종 분석 오류에 대한 기술적 근거가 포함돼있다.
척도인자 개발은 원자력연구원 주도로 지난 2004년부터 2008년까지 2단계 사업으로 추진됐고, 2009~2014년에는 2년에 한 번씩 주기적 검증이 진행됐다. 왼쪽 첫 번째 그래프는 개발과정의 전알파 분석값(Gross Alpha)으로, 플루토늄239·240 등 알파방사능 핵종분석 값을 합쳐놓은 수치(Alpha Sum)보다 약 70배 높게 분석됐다.
반면 두 번째와 세 번째 1·2차 주기적 검증 단계 그래프에서는 전알파 분석값이 약 6~7배 낮게 분석되는 등 비보수적으로 평가됐다. 네 번째 자료는 2016년 2차 검증에서 사용한 시료 재분석을 통해 보정한 곡선이다. 네 번째 그래프와는 달리 1·2차 검증 그래프의 모양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한 소장은 "1차 검증에서 '불만족' 결과가 나왔는데도 2009년 척도인자 인허가를 신청했다는 것은 검증 자료를 규제기관에 제대로 제출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라면서 "1차 검증에 문제가 있다는 건 2011년 검증도 마찬가지. 보정 곡선 적용 전 인허가 받은 척도인자가 사용된 방폐물은 잘못 분석된 상태로 방폐장에 옮겨진 셈"이라고 지적했다.
원자력안전기술원(킨스) 관계자는 "척도인자 주기적 검증은 원전 사업자가 수행하고, 척도인자 개정이 필요한 경우 규제기관은 심사를 통해 적합성을 확인하고 있다"면서 "사업자는 주기적 검증 시 척도인자 값이 변경될 경우 검증 보고서와 함께 경미한 사항 변경신고서를 제출한 후 적합성을 확인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한수원 관계자는 "주기적 검증 시 분석값이 6~7배 낮게 나왔지만 당초 개발된 척도인자가 보수적인 수준이었기 때문에 인허가 범위 안에 포함된다"면서 "현재 전체 값에는 문제없지만 지나치게 보수적인 척도인자 산출은 방폐장의 원활한 사용을 위해 완화될 필요는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두 번째 근거는 분석 절차에서 연구원이 충분한 시료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척도인자를 설정했다는 것이다. 샘플 부족으로 통계 처리가 불가능한데도 데이터 수를 임의로 늘려 적용함으로써 통계적 신뢰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는지적이다.
해당 자료는 한울 원전 2·3발전소 중저준위 잡고체 폐기물 결과로, 가로축은 코발트-60, 세로축은 니켈-59의 농도다. 감마선을 방출하는 핵종인 코발트-60을 기준으로 척도인자를 도출해 베타핵종인 니켈59의 방사능 농도를 측정했다는 뜻이다. 원과 삼각형은 척도인자 미가공 데이터(raw data)를 표시한 것으로 방폐물 시료 분석값을 뜻한다. 척도인자를 도출하려면 최소 10개의 핵종 데이터가 필요하다.
10개 이상의 측정값이 그래프에 겹치지 않은 상태로 각각 표시돼 있어야 통계적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지만 해당 자료는 기준을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삼각형으로 표시된 두 번째 데이터는 2~3개씩 중첩돼있다. 이는 시료 부족으로 통계 처리가 불가능함에도 1개의 데이터를 3배로 부풀렸다는 지적이다. 데이터 수가 부족할 경우 시료를 다시 채취해 분석해야 하지만 확보만 데이터만 이용해 통계 처리를 했다는 뜻이다. 여론조사로 본다면 표본집단 크기와 대표성이 불확실한데도 조사를 진행해 과학적 타당성이 입증된 것처럼 결과를 도출한 것과 비슷하다.
한수원 관계자는 "주기적 검증으로 필요한 시료 수는 충분히 확보됐다는 것을 확인했다"면서 "측정값이 문제가 있으면 개정을 하는데 2011~2012년 한울 원전 폐기물을 대상으로 실시된 바 있지만 대동소이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원자력연구원이 수행한 핵종분석에 대해 제대로 검증할 방법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한 소장은 "사실 원자력계는 핵종분석 오류 관련 지난 2010년께 이미 인지하고도 지금까지 숨기기에 급급했다"면서 "중·저준위 관리 체계도 엉망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는데 현 시스템 하에서 사용후핵연료 관리는 과연 안전을 장담할 수 있을지도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