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만 하면 부각하는 '중국 공포'에 투심 위축
[서울파이낸스 남궁영진 기자] 국내 증시에 상장한 중국 기업들에서 잇달아 감사 문제가 불거지면서, 그간 잠잠했던 '차이나 리스크'가 다시 부각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부 기업들이 나름의 호실적을 시현하고 주주친화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중국 기업발(發) 악재에 투자자들로 하여금 불신이 깊어지는 형국이다.
전문가들은 일부 사례를 두고 중국계 기업 전체로 매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차이나 포비아'로 투자 심리 회복에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닥 상장사 중국 기업 차이나그레이트는 지난 18일 공시를 통해 2018사업연도 재무제표에 대한 감사보고서에서 감사의견으로 '의견거절'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에 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는 차이나그레이트에 대해 '상장폐지사유가 발생해 19일부터 주권매매거래를 정지했다'고 공시했다.
중국 기업으로 코스닥 시장에 상장된 이스트아시아홀딩스도 같은 날 주식거래가 정지됐다. 외부감사인 선임되지 않으면서 22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감사보고서를 발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날부터 10일 내로 감사보고서를 포함한 사업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한다.
국내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들이 외부감사 관련 문제로 주식 거래가 정지되자, 시장에선 불안한 시선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최근 수년간 중국 기업들이 국내 증시에서 각종 허위·불성실공시, 회계부정 등을 일으키며 쫓겨난 나쁜 선례를 남겼기 때문이다. 이는 투자자들 사이에서 '차이나 포비아'(중국 공포증)', '차이나 디스카운트'(중국 주식 평가절하) 등 중국에 대한 깊은 불신으로 이어지기에 충분했다.
실제, 해외 기업이 국내 증시에 진입하기 시작한 지난 2007년 이후 상장 폐지된 중국 기업은 11곳에 달한다. 지난 2011년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완리는 감사보고서에 대한 외부감사인의 검토의견으로 '의견거절'을 받아 증시에서 퇴출됐다.
불성실 공시·공시 번복 등을 상습적으로 어긴 차이나하오란도 관리종목 지정 뒤 분기보고서를 기한 내 제출하지 않아 상장폐지됐고,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였던 중국원양자원도 수차례 허위공시를 일으켜 투자자의 공분을 산 끝에 상장폐지됐다. 지난 2011년 유가증권시장 상장 이후 1000억 원대 회계부정을 저질렀던 고섬은 '차이나 디스카운트'라는 오명을 쓰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차이나 리스크' 조짐에 국내에 상장 중인 중국 기업들에 대한 투자 심리도 악화되는 모습이다. 씨케이에이치는 나흘 연속 하락하며 26%대 낙폭을 보였고, 같은 기간 로스웰(-7.48%), 헝셩그룹(-4.61%), 에스앤씨엔진그룹(-3.93%) 등도 약세를 보이고 있다.
일부 중국 기업들이 호실적을 시현하고, 배당 확대와 자사주 매입 등 주주 친화적 행보를 보이는 한편, 한국 기업들과의 협력관계 구축에도 주력하고 있지만, 깊어진 '중국 트라우마'에 모두가 무색한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시장에 만연해 있는 중국 기업들에 대한 불신이 희석되는 데는 적잖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봤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잊을 만하면 고개를 드는 차이나 포비아에 지극히 멀쩡하고 모범적이라 할 수 있는 중국 기업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치는 실정"이라며 "중국 기업에 대한 불신이 수년간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매번 악재가 발생하니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에 향후 국내 증시에 출사표 예정인 중국 기업들의 흥행도 장담하지 못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에 상장된 중국 기업의 경우, 공시와 상장 관련한 부분은 우리나라 규제를 받지만, 기업 자체의 문제는 국내 규제로 해결하기 힘든 영역"이라며 "이에 따라 중국 기업 스스로 적극적 소통과 교류 등에 주력해 투자자들로 하여금 불안한 시선을 거두려는 노력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일부 사례를 두고 중국 기업 전반으로 확대해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국내 코스닥 상장사 한 관계자는 "이번 중국 기업의 거래정지는 최근 강화된 신(新)외부회계감사법의 영향이 크다"면서 "국내 기업들도 더러 '비적정' 의견을 받고 있는데 유독 중국 기업 문제로 부각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 기업도 거래소나 금융당국의 엄격하고 꼼꼼한 심사를 거쳐 증시에 입성했음에도, 중국계라는 이유로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