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 쥐었던 은행권···위기상황 임박하자 전방위 로비
[서울파이낸스 박시형 기자] "금융위원회는 지금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어요."
핀테크 업체 한 관계자가 던진 말입니다. 사업 라이선스 승인 권한을 쥐고 있는 금융위가 무슨 싸움을, 그것도 외로운 싸움을 한다는 건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실상을 알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금융위는 오는 12월 전 은행권과 핀테크 기업을 대상으로 오픈뱅킹 시스템을 내놓을 예정입니다.
오픈뱅킹은 말그대로 지금까지는 은행들끼리도 수수료를 낼 만큼 폐쇄적으로 이용했던 송금·결제망을 모두에게 열어주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은행들은 보안 문제와 비용 문제를 지목해 왜 은행이 모두 부담해야 하냐고 주장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기술력이 모자란 핀테크 기업이 오픈뱅킹 시스템으로 들어오면 단 한번의 해킹만으로도 전 금융권이 혼란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금융당국은 실무전문가 등으로 이뤄진 조직을 구성해 오픈뱅킹 시스템에 진입하는 핀테크 기업을 선별할 방침입니다.
비용 문제는 폭증하는 데이터 전송량으로 해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는 게 당국과 핀테크 업계의 입장입니다. 전산망은 한 번 만들어 놓으면 거래량이 증가하더라도 추가 비용은 크게 늘지 않습니다. 하지만 거래량은 늘어날수록 수익이 커지지요. 거래량의 증가세가 전산망 추가비용보다 훨씬 빠르면 수익은 자연스럽게 커지게 됩니다.
그런데도 은행이 반대하는 이유는 뭘까요? 업계에서는 데이터 주도권이 궁극적인 원인이라고 지목합니다.
폐쇄적인 망을 사용할때만 해도 금융소비자들은 은행이 시키는대로 다 했습니다. 개인정보를 은행이 다 보관하고 있었고, 뜻대로 안하면 소비자에게 불이익이 돌아왔으니까요. 은행이 개인신용등급과 무관하게 금리를 매긴 사실이 드러난 게 불과 지난해의 일입니다. 그렇다보니 은행은 이자 장사를 통해 조단위의 수익을 벌어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은행망이 열리고 수많은 핀테크 사업자가 들어오면 개인정보의 주도권이 은행에서 벗어나 금융소비자에게 돌아갑니다. 금융소비자가 핀테크 기업을 통해 송금이나 대출을 요청하면 은행은 그걸 실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안된다고 거절하면 금융소비자는 다른 핀테크 플랫폼과 다른 은행을 이용하면 그만이거든요.
핀테크 기업들은 은행보다 소비자가 원하는 바를 잘 맞춰야 수익이 생기기 때문에 소비자에게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도권을 뺏기게 생긴 은행 입장에서는 속이 끓을 겁니다. 그래서 수백조원 규모의 자산을 이용해 암암리에 로비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사업 라이선스를 쥐고 있는 금융위는 가장 심한 압박을 받을 겁니다. 하다못해 기한이라도 늦춰 보라는 압박을 받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금융위는 올 초 금융혁신지원 특별법이 시행(4월 1일) 되기도 전부터 금융규제 샌드박스나 오픈뱅킹 등 각종 규제 혁신안이 담긴 주머니를 풀어버렸습니다.
한 때 은행과 금융위는 가장 가까웠던 관계였지만 이번 오픈뱅킹 때문에 한 순간에 적(?)으로 돌아섰습니다.
금융위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습니다. 수년 전부터 오픈플랫폼 도입에 대한 시그널을 줬음에도 은행들은 하는 척만 했습니다. 기득권을 지키려 수수료도 엄청나게 비싸게 책정했습니다. 결국 금융위는 권고를 포기하고 강제 집행에 나섰습니다.
다시 핀테크 업체 관계자가 말합니다. "금융소비자를 위한 금융혁신의 큰 그림을 그리고 이를 위해 온 힘을 다 하고 있는 금융위를 칭찬해 마땅하다"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