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이진희 기자]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한층 강력해진 '분양가 옥죄기'가 시장의 불안과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HUG 측은 당장 분양가가 인하될 것으로 기대하는 반면, 정작 강남권 재건축 단지들은 더 높은 분양가 책정을 위해 '후분양'으로 속속 선회하며 향후 '분양가 급증' 우려를 키우는 분위기다.
일각에선 HUG가 고분양가 논란, 이재광 사장의 각종 비리의혹을 잠재우기 위해 무리하게 기준 변경 발표를 한 것 아니냐는 비난까지 커지고 있어 시장 혼란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6일 HUG는 분양가 한도를 최대 주변 시세의 110%에서 100%로 낮추는 내용의 '고분양가 사업장 심사기준 개선안'을 발표했다. 대상 지역은 서울 전 자치구와 경기·부산·대구 일부 지역으로, 오는 24일 분양보증 발급분부터 적용된다.
개선안은 심사 대상 사업장 인근에 최근 1년 내 분양한 아파트가 있으면 기존 분양단지의 평균 분양가 수준으로 분양가를 정하도록 했고, 사업장 인근에 1년 초과 분양단지만 있을 땐 분양가가 비교 단지의 105%를 넘지 못하도록 했다. HUG는 분양가 심사기준에 맞지 않을 경우 분양보증을 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개선안이 발표되자마자 시장에선 적잖은 반발의 목소리가 나왔다. 강남권 주요 재건축 단지들은 '후분양'을 택할 것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고, 강북권 재개발 사업장에서는 '적정 분양가 책정 없이는 사업을 진행할 수 없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실제 서울 서초구 방배13구역과 반포 주공1·2·4주구, 신반포4주구 등은 후분양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으며, 당초 이달 분양할 예정이었던 강남구 '래미안 라클래시'는 사실상 분양이 미뤄졌다.
후분양이 분양가 규제를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떠오른 것은 HUG의 분양보증 없이 분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체 공정의 3분의 2가 지난 후분양의 경우 시공사의 연대 보증만 있어도 입주자 모집이 가능하다.
착공과 함께 분양하는 선분양과 달리 후분양은 계약금·중도금 등 사업비의 70~80%를 조달해야 하는 만큼 자금 부담이 크지만, 소위 현금부자들이 몰려있는 강남권에선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문제는 후분양 사업장이 늘어남에 따라 집값·분양가도 뛰어오를 것이라는 수요자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 주요 자치구의 주택 공급이 지연되면 대기 수요자들로 인해 인근 집값이 상승할 수 있는 데다 무엇보다 후분양을 택한 재건축 조합들이 본격적으로 분양가를 높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조합 입장에서는 차라리 후분양하는 게 낫다"며 "강남구나 서초구 등은 현재 시세와 일반 분양가의 갭이 엄청난 상황인데, 후분양을 통해 분양가 규제를 벗어나게 되면 금융비용이 늘어나는 대신에 평당 분양가를 6000만~7000만원까지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같은 지적에 일각에선 HUG의 분양보증 시장 독점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고 나섰다. 분양보증 기관을 추가로 설치해 제도의 공정성을 높이고, 더욱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그간 HUG의 분양시장 독점에 따른 문제점이 지적되긴 했지만, 이번 개선안으로 인해 불만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회사 노조가 제기하고 있는 이재광 사장의 비리의혹을 덮기 위한 규제 발표가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만큼, 정책 신뢰를 위해서라도 분양보증기관 추가 지정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