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12년 만 '최대 낙폭'···원·달러 환율 17.10원↑
[서울파이낸스 김희정 남궁영진 기자]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과 한일 경제전쟁이 점입가격으로 치달으면서 5일 금융시장이 크게 휘청였다. 코스피가 '심리적 지지선'으로 여겨졌던 1950선마저 무너졌고, 코스닥도 7%대 폭락하며 12년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원·달러 환율은 17.3원 급등하며 3년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오름폭을 나타냈다.
5일 코스피지수는 전장 대비 51.15p(2.56%) 내린 1946.98로, 나흘 연속 하락 마감했다. 전날보다 12.20p(0.61%) 하락한 1985.93에 출발한 지수는 외국인과 개인의 동반 매도세에 장중 낙폭을 확대해 나갔다. 오후 들어선 매도폭을 더욱 확대한 영향으로 1950선마저 내줬다. 이날 기록한 종가는 지난 2016년 6월28일(1936.22) 이후 3년 1개월 만의 최저치다.
미중 무역분쟁과 일본의 '화이트 리스트' 배제 등 대외 악재와 원화·위안화 등 환율 급변이 지수 급락을 이끌었다. 전문가들은 '심리적 지지선'이었던 1950선이 붕괴된 가운데, 반등 재료가 부재하다는 점에서 당분간 반등 가능성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한 증권사 센터장은 "국내 증시는 내부 문제에 더해 해외 악재까지 겹치면서 전망이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면서 "기업 이익도 둔화한 상황에서, 여전히 불확실한 미·중 무역분쟁,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등 하나씩만 생겨도 골치 아픈데 악재가 한꺼번에 발생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냉정하게 보면 단기 저점으로 지난해 '검은 10월' 당시 기록했던 1920선까지 내다보고 있다"며 "반등은 기대에 불과할 뿐, 현실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증권사 센터장도 "미·중 무역분쟁과 한·일 이슈도 가늠할 수 없는 악재라 어떻게 될지 전망하기가 애매하다"며 "기업 가치 측면에서 본다면 지수가 바닥권에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주가는 가치 이상 혹은 이하로 빠질 때가 있기 때문에 가늠하기 어렵다"고 제언했다.
매매주체별로는 나흘 연속 '팔자'를 외친 외국인이 3144억원, 개인이 4420억원어치 팔아치우며 지수 하락을 견인했다. 기관은 금융투자업계를 중심으로 7350억원어치 순매수했다. 프로그램 매매에선 차익거래, 비차익거래 모두 매수 우위를 보이며 총 868억1900만원 규모의 순매수를 기록했다.
아시아 주요국 지수도 급락세를 면치 못했다. 홍콩항셍지주(-2.83%)를 비롯, 일본 니케이225지수(-1.74%), 중국상해종합지수(-1.27%), 대만가권지수(-1.19%) 등도 일제히 떨어졌다.
업종별로는 대다수가 급락했다. 의약품(-8.80%)을 비롯, 종이목재(-4.28%), 섬유의복(-4.18%), 기계(-4.11%), 비금속광물(-3.47%), 건설업(-3.46%), 증권(-3.31%), 화학(-3.30%), 운수창고(-3.30%), 제조업(-2.92%), 철강금속(2.87%) 등 대부분이 뚜렷한 하락세를 보였다. 통신업(0.68%)은 홀로 상승 마감했다.
시가총액 상위주도 하락 종목이 우세했다. 대장주 삼성전자(-2.22%)가 나흘째 하락세를 이어갔고, SK하이닉스(-0.92%), 현대모비스(-1.42%), NAVER(-2.82%), LG화학(-4.83%), LG생활건강(-1.72%) 등도 지수 하락을 주도했다. 신한지주와 SK텔레콤은 각각 0.70%, 0.20% 내렸고, 현대차는 보합 마감했다.
이날 코스피시장에서 하락 종목(816곳)이 상승 종목(66곳)을 압도했고, 변동 없는 종목은 11곳으로 마감했다.
코스닥지수는 전장 대비 45.91p(7.46%) 내린 569.79로 사흘째 하락세를 이어갔다. 전일보다 1.01p(0.16%) 내린 614.69에 출발한 지수는 초반부터 빠르게 낙폭이 확대되며 570선마저 무너졌다.
셀트리온헬스케어(-0.50%)와 CJ ENM(-5.39%), 헬릭스미스(-17.36%), 펄어비스(-4.54%), 케이엠더블유(-4.54%), 휴젤(-2.58%), 메디톡스(-19.07%), 스튜디오드래곤(-6.23%), 신라젠(-29.93%) 등 시총 상위주가 지수 폭락을 이끌었다.
지수가 급락하자 한국거래소는 이날 오후 2시 9분 12초경 코스닥150선물가격 및 현물지수(코스닥150)의 변동으로 향후 5분간 프로그램매도호가의 효력이 정지(사이드카 발동)된다고 공시하기도 했다. 이날
사이드카란 시장 상황이 급변할 경우 프로그램 매매 호가를 일시적으로 제한함으로써 프로그램 매매가 코스닥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제도다.
코스닥시장에서 지수 급락에 따른 사이드카 발동은 지난 2016년 6월24일 이후 약 3년 1개월여 만에 처음이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직전 거래일 보다 17.3원 올라 달러당 1215.3원에 마감했다. 종가기준으로 2016년 3월 9일(1216.20원) 이후 3년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하루 17.3원 환율 상승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당시인 지난 2016년 6월 24일(29.7원) 이후 가장 큰 폭이다.
개장부터 심상치 않았다. 이날 환율은 전 거래일 종가 대비 5.6원 오른 달러당 1203.6원에 거래를 시작해 내내 오름폭을 세 배 이상 키웠다. 환율 상승은 원화가치 하락을 의미한다.
또 다른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엔화의 강세도 눈에 띈다. 원화는 엔화에 대해서도 약세를 보였다. 미중 관세전쟁 격화에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해지며 엔화는 달러화 대비 강세를 보였고, 이에 원·엔 재정환율도 올랐다. 원·엔 재정환율은 오후 3시 30분 기준 100엔당 1147.92원이다. 전 거래일 3시 30분 기준가(1118.95원)보다 28.97원 점프했다.
하준우 DGB대구은행 차장(수석딜러)은 "위안화 약세, 아시아증시 하락 등 외부적인 요인들이 워낙 강했다"며 " 채권금리 하락, 엔화·달러화 같은 안전통화 초강세, 주식시장 하락 등 시장 심리가 불안할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장세가 이날 펼쳐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