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김희정 기자] 한국은행이 '극약처방'이라 불리는 양적완화(비전통적 통화수단)를 단행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주요국이 도입했던 비전통적 통화정책 수단들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는 얘기를 슬쩍 꺼내면서다. 하지만 비기축통화국인 우리나라에서 경제 구조개혁 등 양적완화의 부작용을 감당할 수 있겠냐는 의구심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다. 앞서 양적완화를 도입했던 주요국의 경제가 나아지고 있는지도 판단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 총재가 비전통적 통화수단을 한은 내부에서 연구하고 있다는 말을 꺼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016년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이 '한국판 양적완화'를 주장하며 국책은행에 직접 출자하라고 한은을 압박한 사례가 있었지만, 이 총재는 "(총재의) 직을 걸고 막겠다”면서 끝내 출자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랬던 이 총재가 이번엔 자체적으로 비전통적 통화수단을 거론하고 나선 것이다. 이 총재는 "아직 금리정책 이외의 정책수단을 고려할 때는 아니다"고 단서를 달았지만, 시장은 "금리인하 무용론이 나오는 상황에서 한은이 다른 방식의 완화정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며 의의를 찾는 모습이다.
비전통적 통화정책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썼던 양적완화가 대표적이다. 양적완화는 중앙은행이 필요시 국채나 민간채권을 매입해 시중에 유동성을 푸는 방안이다. 연준·유럽중앙은행(ECB)·일본은행(BOJ)세계 주요 중앙은행들은 제로금리 수준의 저금리에도 경기 회복이 더디고, 물가가 오르지 않자 양적완화 카드를 꺼내들었다. 특히 연준은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2012년 9월까지 3차 양적완화를 시행하며 미국 경기를 최상까지 끌어올린 바 있다.
우리경제는 D(디플레이션)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 한은이 올해 경제성장률을 2.2%로 전망한 데 반해, 해외 주요 투자은행(IB)들은 1%대 후반까지 내려 잡았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사상 첫 마이너스(-0.4%)를 기록한 가운데, 같은달 기대인플레이션율(향후 1년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도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1%대로 주저앉았다. 양적완화를 통해 경기가 살아나고 기대인플레이션을 높일 수 있다면 사용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양적완화의 효과는 아직까지 논란거리다. 전문가들도 긍정적인 효과보다 부정적인 효과를 더 강조한다. 신동수 유진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에서 양적완화는 아직 무리"라고 강조했다. 오랜 저금리로 좀비기업이 연명해 경제 구조개혁이 지연될 수 있는 데다, 자산버블을 통해 소비를 위축시켜 오히려 디플레 현상을 심화시킨다는 게 부정론의 핵심이다.
앞서 양적완화를 시행한 유로존과 일본의 성장률과 기대인플레이션이 기조적으로 높아졌는지도 아직까지 안갯속이다. 김홍범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는 "양적완화가 글로벌경기에 중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가져왔는지 아직도 알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일례로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유로존의 성장률을 1.2%(4월 전망치 1.3%)로, 내년에는 1.4%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일본은 올해 0.9% 성장하는 데 그치고, 내년에는 이보다 더 나빠진 0.5%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봤다. 모두 한국의 성장률 전망(올해 2.0%, 내년 2.2%)보다 낮다.
이미선 부국증권 연구원은 "양적완화 이후 미국의 펀더멘털은 견고해졌다"면서도 "그러나 그 효과는 미국이 기축통화국이어서 가능했다"고 지적했다. 비기축통화국인 우리나라에서 양적완화로 돈이 대거 풀려버리면 원화 가치가 가파르게 하락해 외환시장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다. 환율 변동은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워 최악의 경우 급격한 자본유출도 초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