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김희정 기자] '베이비 스텝이냐, 빅 컷이냐'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악재 여파에 두 차례 금리인상을 단행하자 금융시장은 한국은행의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관심은 0.25%p 베이비스텝일지, 0.5%p 또는 그 이상의 빅컷이 나타날지에 쏠린다.
연준은 15일(현지시간) 연방 기준금리를 기존 1.00%~1.25%에서 0.00%~0.25%로 1%p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 악재에 따른 금융시장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제로(0)금리' 수준으로 전격 인하한 것이다.
연준은 오는 17일부터 이틀간 정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 예정인데, 이보다 한 발 앞서 금리를 끌어내렸다. 일시에 내린 인하폭(1.0%p)도 극히 이례적이다. 연준은 앞서 지난 3일 기준금리를 기존 대비 0.5%p 내린 데 이어 이날 추가 금리 인하를 단행해 3월에만 총 1.5%p의 금리를 인하했다.
연준은 유동성 공급 확대를 위해 7000억달러 규모의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도 매입한다고 밝혔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제로금리와 양적완화 조치를 동시에 취한 것으로, 그만큼 코로나19 확산 사태를 심각하게 봤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돈 풀기에 나서는 건 연준 뿐이 아니다. 앞서 캐나다 중앙은행(BOC)은 연준이 이달 초 0.5%p 금리인하를 한 다음날 뒤따라 기준금리를 0.5%p 내렸고, 영국중앙은행(BoE)은 11일 기준금리를 0.50%p 깜짝 인하했다. 일본은행은 19일 예정된 금융정책 회의를 이날 정오로 앞당기기로 했다. 20일엔 중국 인민은행의 대출우대금리 결정과 러시아 통화정책회가 예정돼 있다. 모두 금리인하 등 추가 완화조치가 단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자 한은도 더 이상 '강 건너 불구경'만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지금까지 금리인하 여부의 결정은 데이터 디펜던트(data dependent·경제지표 의존)의 연속이었지만 신흥국 통화정책의 바로미터인 미국이 선제적인 금리인하를 단행한 만큼, 한은도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지난달 기준금리를 동결(연 1.25%)한 가운데 이미 '늑장 대응', 금리인하 타이밍을 여러번 놓쳤다는 '금리 실기론' 등 거센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졌다. 미국과의 금리 격차가 1%대로 벌어졌으니 대내외 금리인하 압박도 더 거세졌다. 한은으로서도 특단의 대책이 나올 수밖에 없는 시점이다.
시장은 한은이 이르면 이날 오후, 늦어도 17일까지는 임시 금통위를 열어 금리인하에 나설 것으로 본다. 다만 금리인하 폭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부에서는 0.25%p 인하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신동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금융시장은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고, 외국인도 이탈 추세를 보이고 있다"며 "한은의 통화완화 환경이 녹록치 않다"고 했다. 신 연구원은 또 "더구나 가계대출 증가와 주택가격 상승으로 금융불균형 우려도 높다. 현실적으로 0.5%p 인하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은이 빅컷 금리인하를 할 경우 사상 처음 0%대의 최저금리(연 0.75%) 시대에 곧바로 진입해 부담이 만만치 않다. '가보지 않은 길'을 충분한 가이드라인과 시그널 없이 한 번에 갈 경우 우리 경제가 받을 충격에 대한 금통위원들의 고민도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저금리 장기화에 따라 시중 유동성이 넘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지만 금리인하의 실물경기 부양효과에 대한 의구심도 날로 커지고 있다.
그러나 0.25%p 인하만으로는 큰 효과를 주기 어렵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3일 "지금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는 비교가 안 되는 비상 경제시국"이라며 "그때와는 양상이 다르고 특별하니 전례 없는 일을 해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외환시장 딜러는 "연준이 FOMC를 불과 몇 일 앞두고 선제적으로 금리인하를 했다"며 "한미금리차가 1%대로 다시 벌어졌기 때문에 0.5%p 금리인하는 해줘야 간격이 맞춰질 수 있다" 말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미 연준이 이달만 1.5%p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그런 상황에서 한은이 0.25%p에 그친다면 시장의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