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김희정 기자]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분쟁조정안에 대해 은행들이 소극적인 태도로 시간끌기에 나섰다. 키코 배상을 요청받아 온 신한은행과 하나은행, DGB대구은행이 5번째 배상 수락 연기 요청에 나서는 것으로 가닥을 잡아서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하나·대구은행은 키코 분쟁조정안 수용 여부에 대한 입장 회신 기한을 재연장해달라고 금감원에 요구하기로 했다. 은행권의 연장 요청은 5번째로, 지난해 12월 금감원에서 키코 분쟁조정안이 나온 이후 5개월째 배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이사회에서 키코 사안에 대하여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해 배상 여부 결정 기한 여부를 연장 요청할 계획"이라고 했다. 앞서 하나은행은 '이사회 구성원 변경',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금융지원' 등을 이유로 금감원에 수락 기한 연장을 요청한 바 있다.
대구은행 관계자도 "코로나19 장기화로 악화된 지역경제 지원에 은행 역량이 집중됨에 따라 본건에 대한 논의가 현실적으로 어려워 (배상안 회신 기한을) 연장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으나 하나·대구은행과 비슷한 이유를 들어 금감원에 회신 기한 연장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는 지난해 12월 12일 키코 상품을 판매한 은행 6곳의 불완전판매에 따른 배상책임이 인정된다며 기업 4곳에 손실액의 15∼41%를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은행별 배상액은 신한은행이 150억원으로 가장 많다. 이어 △우리은행 42억원 △KDB산업은행 28억원 △하나은행 18억원 △대구은행 11억원 △한국씨티은행 6억원 순이다.
이들 은행 가운데 분쟁조정안을 수용하고 배상금 지급을 마친 곳은 우리은행이 유일하다. 산업은행과 씨티은행은 소멸시효가 지나 법적 배상책임이 없는 키코 분쟁조정안을 수락하면 주주가치를 훼손, 배임의 소지가 있다며 이를 거부했다.
금감원 분쟁조정안은 강제력이 없어 양 당사자가 수용의사를 밝힐 경우에만 효력을 갖는다. 분쟁조정 결과가 나온 지 5개월여가 됐지만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유다.
은행들이 분쟁조정안에 대해 결정을 재차 미루며 사실상 배상을 거부하자 금감원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지난달 27일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 "금액이 적은 건 아니지만 이걸 정리하고 가는 건 한국금융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는 것"이라며 "은행들이 더 긍정적으로 봐줄 소지는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변동하면 약정한 환율에 외화를 팔 수 있는 파생금융상품이다. 수출 중소기업들이 환 헤지 목적으로 대거 가입했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원·달러 환율이 치솟으면서 막대한 손실을 봤다. 키코 공동대책위원회는 당시 723개 기업이 약 3조3000억원의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