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WTO, 불공정 무역 제어 못한다" 비판
[서울파이낸스 김태동 기자] 호베르투 아제베두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이 임기를 1년여 앞두고 돌연 사임의사를 밝혔다. 코로나19와 미중 무역갈등 속에 나온 것이어서 그의 사퇴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그는 14일(현지시간) 화상으로 진행된 비공식 대표단 회의에서 "올해 8월 31일 자로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임기 만료일은 내년 8월 말이다.
그의 사임 발표는 전날까지도 스위스 제네바에 자리한 WTO 사무국 내부나 회원국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그의 중도 사임 계획을 알리는 외신 보도가 나오면서 WTO 사무국이 이날 급박하게 화상 대표단 회의를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아제베두 사무총장이 전격적으로 사임 계획을 발표했지만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아제베두 사무총장은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봉쇄 조치와 무릎 수술로 평소보다 생각할 많은 시간을 갖게 됐다"면서 "가족과 상의한 끝에 개인적인 사유로 (사임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건강과 관련이 없다"면서 "어떠한 정치적 기회를 추구하지도 않는다"고도 했다. 그는 사임 발표 직후 블룸버그 통신과 진행한 전화 인터뷰에서도 고국인 브라질에서 정치 경력을 쌓기 위해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고 재차 밝혔다.
아제베두 사무총장은 그러나 사임 시기에 대해서는 WTO를 위해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차기 사무총장 선거와 내년 6월 또는 연말에 열릴 것으로 보이는 각료회의(MC12)가 겹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통상 WTO의 차기 사무총장 선거는 현 사무총장의 임기 만료 직전 해 12월에 후보 접수를 시작으로 이듬해 1∼3월 선거 운동, 4∼5월 선호도 조사 등의 단계를 거쳐 5월 말 내정자를 결정한다. 업무 시작은 9월 1일에 한다.
아제베두 사무총장은 "현재 상황으로는 MC12가 2021년 중반이나 그해 말에 열릴 것으로 보인다"며 내년 중반에 열릴 경우 선거 일정과 겹치게 돼 "MC12의 준비 작업에 부담이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퇴 고려 시 타이밍에 대한 고려가 마음에 걸렸다"면서 "(차기 사무총장) 선발 과정을 빨리 진행할 수 있도록 할수록 더 좋다는 것이 내 결론"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설명에도 일각에서는 그의 사임 결정에 대해 무책임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코로나19 대유행에 대응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봉쇄령을 내리면서 글로벌 교역이 멈춰서고 실업과 경기 침체가 현실화한 이때 세계 무역 질서를 관장하는 수장으로서 급작스러운 결정을 내린 것은 적절한 처신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더구나 봉합되는 듯 보였던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이 코로나19 책임 공방을 빌미로 다시 시작됐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몽니를 부리면서 WTO의 주요 기능 중 하나인 분쟁 해결 기능도 마비된 상태다. WTO에서 '대법원' 역할을 하는 상소 기구가 미국의 상소 위원 선임 반대로 지난해 12월부터 제구실을 못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2001년 WTO에 가입한 뒤 불공정 무역 행위를 일삼고 있는데도 WTO가 이를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며 WTO를 비판해 왔다.
싱크 탱크 CEPII의 세바스티앙 장 대표는 AFP와의 인터뷰에서 "무역 시스템이 매우 불안정화하기 시작했다"면서 "(아제베두 사무총장의 사임 발표는) WTO에 매우 좋지 않은 때 나왔다"고 지적했다.
아제베두 사무총장이 8월 말 물러나겠다고 한 만큼 누가 그 자리를 이어받을지도 관심인데, AFP 통신은 WTO 내부 출신과 아프리카 출신 등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그는 WTO가 해야 할 과제로 내부 개혁과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세계 경제 회복을 지목했다. 아울러 차기 사무총장 선거도 차질없이 진행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대해 데이비드 워커 WTO 일반이사회 의장은 일정을 앞당겨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WTO의 6번째 사무총장인 아제베두 사무총장은 지난 2013년 9월 취임한 뒤 4년의 임기를 마치고 2017년부터 2번째 임기를 맡았다. 그의 부인은 마리아 나자레트 파라니 아제베두 제네바 주재 브라질 대표부 대사다. 아제베두 사무총장이 중도 사임하면서 잔여 임기는 4명의 사무차장 중 한 명이 임시로 대행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