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김희정 기자] 금융감독원이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 사태의 추가 분쟁 자율배상 문제를 다룰 은행협의체를 가동한다. 앞서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 심판대에 오르지 않았던 KB국민·기업은행·농협은행·SC은행·HSBC은행 등 5개 은행도 은행협의체에 참여토록 간담회를 여는 것이 시작이다.
금융권에서는 은행협의체 자율배상이 원활히 이뤄질지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미 은행들이 금감원의 키코 분쟁조정안을 거부한 상태인 데다, 금감원도 배상비율을 제시하는 선에서 그쳐 은행들이 배상에 적극적인 태도로 나설 유인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10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감원은 오는 12일 국민·기업은행·농협은행·SC은행·HSBC은행 등 키코 판매 은행들과의 간담회를 열 예정이다. 금감원은 간담회 자리에서 이들 은행의 은행협의체 참여 의사를 확인하고 은행연합회 등과 구성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지난해 12월 금감원 분조위는 키코 상품을 판매한 신한·우리·하나·DGB대구·씨티·KDB산업은행의 불완전판매에 따른 배상책임이 인정된다며 기업 4곳에 손실액의 15∼41%를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하지만 우리은행을 뺀 5개 은행은 지난 5일 키코 분쟁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4개 기업에 대한 분쟁조정 절차는 종결됐다. 은행들은 소멸시효, 경과에 따른 배임 소지, 나머지 피해기업에 대한 추가배상 부담, 채무탕감 과다 등을 이유로 조정안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다만 신한·하나·대구은행이 나머지 키코 피해기업에 대한 자율배상 논의에 참여키로 발표한 데 따라 이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씨티은행도 추가 배상 대상 기업 39곳에 자체 검토를 걸쳐 적정한 보상을 고려하기로 했다.
추가 구제대상 기업은 키코 사태 발생 당시 발표된 피해기업 732곳 가운데 소송을 제기했거나 해산한 기업(61개)을 제외한 나머지 145개 기업으로 추산된다. 금감원은 원만한 자율배상 진행을 위해 분조위 결정내용 및 배상비율 산정기준 설명 등 협의체를 지원할 계획이다.
정성웅 금감원 부원장보는 "분쟁조정안은 배상 비율을 고정해 줬기 때문에 협의여지가 없었다"면서도 "추가 배상은 은행 자율협의체로 구성하거나 내부적 판단해 구제하기 때문에 그런 측면에서 나머지 기업에 대해 추가구제 방안을 마련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권 일부에서는 우리은행을 뺀 5개 은행(신한·하나·대구·씨티·산업은행)이 금감원이 제시한 키코 분쟁조정안을 거부한 상태라 은행협의체가 제대로 작동할지는 미지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자율배상은 이미 은행들이 거부한 분쟁조정안을 바탕으로 제시될 공산이 큰데, 분쟁조정안을 거부한 은행들이 자율배상에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은행들의 이해관계도 다른 데다, 민법상 소멸시효가 끝나 배상의무가 없어 배임 이슈도 여전히 남아있다. 특히 이번 협의체 구성과 배상 비율 결정은 은행 자율에 맡기는 것이다. 금감원 분조위처럼 강제성이 없다. 사실상 은행과 피해기업 간 2자 협의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협의체는 관련 은행들과 키코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의 소통채널로 빠르고 효율적인 분쟁조정을 위해 꾸려지는 것인데 분쟁조정안에 다른 입장을 보인 은행들이 은행협의체를 통해서 같은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고 본다"고 꼬집었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변동하면 약정한 환율에 외화를 팔 수 있는 파생금융상품이다. 수출 중소기업들이 환 헤지 목적으로 대거 가입했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원·달러 환율이 치솟으면서 막대한 손실을 봤다. 키코 공동대책위원회는 당시 723개 기업이 약 3조3000억원의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