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선례에 부담vs금융당국 압박 등 감안해 수용
[서울파이낸스 남궁영진 기자] 금융감독원이 권고한 '라임 플루토 TF-1호'(무역금융펀드) 100% 배상안에 대한 수용 여부 답변 기한이 닷새 앞으로 다가왔다. 이러한 가운데 하나은행이 의사 결정 연장을 요청하면서 다른 판매사들의 선택에도 관심이 모인다.
업계에서는 판매사들이 답변을 미룬 뒤 결국 금감원의 권고안을 불수용할 가능성을 높게 본다. 초유의 '사모펀드 100% 배상'이라는 선례에 대한 부담감이 크게 작용할 것이란 판단에서다. 다만 금융당국의 은근한 압박 등을 감안해 받아들일 것으로 보는 의견도 나온다.
하나은행은 지난 21일 이사회에서 금감원 분조위가 권고한 '라임펀드 100% 배상안'의 수용 여부를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에 결정(답변) 기한을 다음 이사회 일정까지 연장해 달라고 금감원 측에 요청할 예정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분조위 결정을 수락할 경우 조정이 성립되고,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이 발생하는 만큼, 수락 여부를 좀 더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향후 이사회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관련 논의를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하나은행이 수용 여부 연기를 결정하면서, 오는 24일 이사회를 여는 우리은행을 비롯한 신한금융투자 등 여타 판매사들도 금감원에 답변 기한 연장을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권고 대상자들의 요청이 합리적인 경우 수용할 수밖에 없다"며 "권고안에 대한 법률 검토 등 여러 고민을 거친 판매사들은 다음 번에 의사 결정을 내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분조위는 라임운용이 2018년 11월 이후 판매된 라임 무역금융펀드에 대해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를 결정, 투자자에게 원금 100% 배상을 권고했다. 계약 체결 시점에 이미 원금이 최대 98%에 달하는 손실이 발생한 상황에서 투자제안서 내용을 그대로 설명해 투자자의 착오를 유발했다는 판단에서다.
금감원은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권고안을 이달 7일 주요 판매사에 통지했고, 판매사들은 오는 27일까지 수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무역금융펀드는 우리은행(650억원)을 비롯, 신한금융투자(425억원), 미래에셋대우(91억원), 신영증권(81억원) 등이 팔았다.
업계에서는 판매사들이 금감원의 권고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사모펀드 전액 배상이라는 선례를 남긴다는 점이 막중한 부담이 될뿐더러, 펀드 운용사의 부정을 판매사가 떠안는 것이 과도하다는 이유에서다.
자본시장 한 관계자는 "현재까지 사기가 아닌 이상 판매사가 투자 원금을 전액 반환했던 전례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판매사들이 이번 금감원의 권고안을 받아들인다면 최초 사례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향후 사모펀드 관련 사고가 추가 발생할 개연성이 높은 상황에서, '전액 배상' 선례가 남는다면 라임 펀드 판매사들로서는 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면서 "(판매사들은) 권고안 수락 논의 과정에서 상당히 곤혹스러워하며 장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분조위가 판단한 대로 투자자의 착오를 유발한 점 등은 인정하지만, 부실을 감춘 운용사의 흠결 등을 판매사가 고스란히 떠안는 것은 다소 부당하게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판매사 나름대로 제반 사안을 면밀히 검토하겠지만, 권고안 수락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반해 금융당국의 보이지 않는 압박을 판매사들이 무시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권고인 만큼 법적으로 강제할 수는 없지만, 판매사들은 투자자 보호와 소비자 신뢰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은 금융당국의 의지를 모른 체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권고안을 불수용할 경우 추후 법적 공방이 불가피해지고, 이에 따라 주요 고객들의 외면도 잇따를 수 있다"며 "판매사들은 이처럼 리스키한 상황을 피하는 결정을 내릴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