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실적 부진···이례적 8월 인사
[서울파이낸스 박지수 기자] 롯데그룹 2인자인 황각규 롯데지주 대표이사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롯데지주는 13일 오후 이사회를 열고 황 부회장의 대표이사 해임안건을 통과했다. 황 부회장이 맡았던 롯데지주 대표이사 자리에는 이동우 전 롯데하이마트 대표이사 사장이 내정됐다. 송용덕 롯데지주 부회장은 자리를 지켰다.
황 부회장은 롯데지주 이사회 의장직은 그대로 유지하지만 대표이사에서 물러나면서 사실상 경영 일선에서는 손을 떼게 됐다. 이로써 롯데그룹 3인 대표이사 체제는 '신동빈-황각규-송용덕'에서 '신동빈-송용덕-이동우'로 바뀌었다.
황 부회장은 '신동빈의 오른팔', '신동빈의 남자'로 불리는 신 회장의 최 측근이다. 황 부회장은 1997년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부장 재직 시절 1990년 신동빈 회장이 상무로 부임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이 때 신 회장의 신임을 얻은 것으로 전해졌다. 신 회장이 5년 뒤 롯데그룹 기획조정실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에도, 황 부회장은 기획조정실 국제부장으로 함께 이동했다.
롯데그룹의 굵직한 인수합병(M&A)현장에는 황 부회장이 있었다. 1995년 롯데그룹에 전에 없던 국제부장 직함을 받은 후 해외 진출, M&A에 매진했다. 황 부회장은 2007년 대한화재(현 롯데손해보험) M&A 등 롯데그룹의 굵직한 인수합병을 총괄하며 롯데그룹이 몸집을 키우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7년 롯데그룹이 정책본부를 없애고 경영혁신실을 새로 만들었을 땐 경영혁신실장을 맡았다. 이후 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지주사 체제 전환 작업도 도맡았다. 그해 10월 롯데지주 출범과 동시에 롯데지주 대표이사로 선임,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롯데그룹의 2인자로 통했다.
롯데지주는 "황 부회장은 그룹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해 경영일선에서 용퇴했다"며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비즈니스 환경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젊고 새로운 리더와 함께 그룹의 총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며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황 부회장의 후임인 이동우 사장은 1960년생으로 건국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1986년 롯데백화점에 입사해 정통 롯데맨으로 꼽힌다. 이 사장은 이후 2007년 롯데백화점 잠실점장, 경영지원부문장, 2012년 롯데월드 대표 등을 거친 뒤 2015년 하이마트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그간 롯데는 매년 연말 정기 인사를 단행해왔다. 정기 인사철이 아닌 8월에 측근을 포함한 임원 인사를 단행한 것은 신 회장이 느끼는 위기감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재계에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그룹 주요 계열사들 실적이 바닥을 친 게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롯데그룹 두 축인 유통과 화학 부문은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이 각각 98.5%, 90.5% 떨어지며 부진한 실적을 냈다. 최근 롯데그룹은 주력인 유통과 화학 부문의 고전을 타개하기 위해 3조원을 투자해 롯데그룹 7개 계열사를 통합한 온라인쇼핑몰 롯데온을 선보였으나 아직까진 눈에 띄는 성과가 없는 상태다.
이는 롯데그룹 내부에서 인적 쇄신의 필요성이 더욱 부각된 계기가 됐다. 앞서 신 회장은 지난달 14일 열린 사장단 회의에서 "업무상 낭비를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최고경영자(CEO)가 해야 하는 첫 번째 일"이라며 경영 혁신과 비용 절감을 강조한 바 있다.
롯데그룹은 향후 롯데지주 몸집 줄이기도 추진할 예정이다. 롯데지주는 이날 '경영전략실'을 '경영혁신실'로 개편했다. 여기엔 롯데지주를 경영 전략을 수립하며 계열사들을 이끌던 조직에서, 계열사들을 뒷받침하는 서포터 역할을 맡기겠단 의도다.
경영혁신실장에 롯데렌탈 대표이사인 이훈기 전무가 임명됐으며 경영혁신실은 그룹의 미래 먹거리가 될 신사업 발굴과 계열사 간 시너지 창출 전략 모색에 집중할 예정이다. 현 경영전략실장인 윤종민 사장은 롯데인재개발원장으로 이동한다.
롯데그룹은 지주 외에도 물산·렌탈·액셀러레이터 등 계열사 대표들의 임원인사도 단행했다. 롯데물산 김현수 대표이사 사장은 롯데렌탈 대표이사로 이동했으며 롯데물산 대표이사에는 롯데지주 류제돈 비서팀장이 내정됐다. 롯데인재개발원의 전영민 원장은 롯데액셀러레이터 대표이사를 맡고, 롯데하이마트는 황영근 영업본부장이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이번 인사에 대해 롯데그룹은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등 어려운 경영환경이 지속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그룹의 생존과 미래 성장을 모색하기 위해 혁신과 변화가 시급하다고 판단했다"며 "미래 대비를 위해 새로운 인물을 발탁하고 그룹의 미래성장동력 발굴에 집중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