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 부담 과도" vs "디지털시대 자연스런 흐름"
금융권 "의미있는 시도, 발전적으로 논의해 볼 사안"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KB국민은행이 하반기 신입행원 공채에서 취업준비생들에게 과도한 능력을 요구했다는 논란 끝에 채용절차를 전면 수정하기로 했다. 일반행원 채용 과정에서 난이도가 지나치게 높은 디지털 과제를 부여했다는 게 이번 논란의 핵심이다.
결국 채용절차는 재검토에 들어갔지만 KB국민은행에서 시작된 이번 논란은 디지털 경쟁력이 기업 생존과 직결되는 시대를 마주한 금융권에 중요한 논쟁거리를 남겼다는 평가다. 일각에선 이번 논란이 단순 '해프닝'으로 마무리되기보단 디지털 인재 확보 방안 등 발전적인 논의로 이어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지난 22일 채용사이트에 올렸던 신입행원(L1) 공개채용 공고를 이날 오후 3시경 모두 내렸다. 논란이 됐던 앞선 공고에는 서류전형에 '디지털 과제'와 '디지털 연수'가 추가됐었다. KB금융그룹 차원에서 전사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디지털화에 맞춰 디지털 역량을 갖춘 인재를 채용하겠다는 목적에서다.
이 중 구직자들은 '디지털 과제'를 통해 KB국민은행의 디지털금융 서비스 △KB스타뱅킹 △리브(Liiv) △KB마이머니 중 1개를 선택한 뒤 해당 서비스에 대한 현황과 강·약점, 개선 방향 등을 담은 3~5p 보고서를 지원서 접수 단계에서 함께 제출해야 했다.
지원서와 보고서를 제출한 이후엔 '디지털 연수'에 참가해 온라인 디지털 교육과정(TOPCIT)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했다. 교육은 비즈니스 영역 18시간, 기술 영역 5시간 등 총 24시간으로 구성됐다.
이 모든 절차는 서류전형에 해당된다. 즉, KB국민은행 구직자라면 해당 절차를 모두 거쳐야 필기전형에 참가할 수 있었다. 이를 두고 취준생들 사이에서 신입이 감당하기엔 과제 난이도가 상당히 높다는 불만이 나왔다. 또 디지털 전문 직군이 아닌 신입행원을 채용하는 과정에서까지 디지털 지식을 과도하게 요구하고 있다는 게 취준생들의 주장이었다.
논란이 계속되자 결국 KB국민은행은 채용 재검토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디지털이 워낙 대세라서 디지털 역량을 검증하지 않을 수는 없다"면서도 "다만 이번 공고가 취준생들에게 과도하게 부담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기존보다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프로세스를 수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KB국민은행의 이번 채용 논란과 관련해 은행권에서는 디지털 시대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상이란 평가를 내놓는다. 이번 채용을 계기로 앞으로 금융권의 채용 과정이 디지털 역량 평가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A은행 관계자는 "은행 뿐만 아니라 모든 현업 분야에서 최근 IT나 디지털 인재를 선호하는 상황"이라며 "처음 시도가 어려워서 그렇지 시간이 지나면 이런 채용방식이 일반적인 것으로 정착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내다봤다.
B은행 관계자는 "채용비리 이후에 블라인드 채용을 하면서 기업들도 업무에 잘 적응할 인재를 어떻게 해야 뽑을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아졌다"며 "그런 측면에서 전반적으로 채용 절차가 갈수록 타이트해지고 있는 건데, 또 요즘 이슈가 디지털이니까 관련 이해도가 높은 인재를 뽑으려는 추세가 강해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번 논란이 단순 해프닝에 그치기보단 디지털 시대에 따른 기업 인재상 변화 등을 논의해 볼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국민은행이 첫 스타트를 끊으면서 주목을 받은 것뿐 사실 남일 같지 않다"며 "은행 애플리케이션 하나만 해도 영업점 현장에서 모르면 요즘엔 업무가 안될 정도로 이제 은행원들도 디지털 역량을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게 시대적 흐름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이번 논란은 단순히 '채용갑질' 정도로 마무리될 게 아니라 한 발 더 나아가서 디지털 시대에 기업과 취준생 모두 어떤 역량을 갖춰야 할지 고민해보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