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반발하자 정부, '오해'라며 진화나서···여론은 '냉랭'
[서울파이낸스 박성준 기자] "그렇지 않아도 쏟아지는 부동산 대책에 매물은 씨가 마르고 업자들은 숨통이 막히는데, 이제는 중개사를 '패싱'해서 거래한다고 한다. (중개 없는 시스템은) 중개업 종사자 모두를 길바닥으로 내모는 것밖에 더 되나" (서울 옥수동 B공인중개사사무소)
최근 사회적으로 '비대면(언택트) 시스템'이 주목받는 가운데 공인중개사 업계도 새로운 시스템 등장에 혼란스럽다. 정부가 공인중개사 없이 직접 거래가 가능한 부동산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안을 내놨기 때문이다. 업계는 생존권 위협행위라며 즉각 반발하고 나섰지만, 그간 중개 서비스에 쌓인 불만은 물론 중개 업계에도 기술 발전에 따른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
28일 공인중개 업계는 최근 중개인이 없는 부동산 거래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다는 우려로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정부는 이달 초 한국판 뉴딜 10대 대표 과제로 지능형 정부를 구축하기로 했으며, 내년에만 이런 사업에 8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논란의 발단은 정부가 중개인 없이 부동산 거래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히면서다.
정부는 부동사 매물을 직접 방문·확인하지 않고도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등을 활용해 비대면 거래가 가능할 수 있게끔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특히 중개인이 없는 부동산 거래 대민서비스를 '원스톱'과 비대면으로 바꾸는 지능형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공인중개사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는 정부 발표가 부동산 시장 상황을 자세히 검토하지 않은 탁상행정이라며, 생존권 위협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협회 관계자는 "지역 사정에 밝고, 축적된 노하우가 있는 중개인을 제외한다는 것은 지능형 범죄에 따른 소비자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라며 "매도자, 매수자를 모두 묶어 원스톱 서비스를 실현한다는 것은 허황한 주장에 불과하고, 이에 따른 사고 손실은 사용자들이 직접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또한 이미 종이 문서 대신 전자계약을 통해 비대면으로 부동산 거래가 가능한 전자계약시스템을 만들어놓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지난 2016년부터 시행된 전자계약시스템은 최근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관심을 받았지만, 지난해 기준 전체 매매·전월세 거래 가운데 전자계약으로 체결된 건수는 전체 276만건 중 단 0.25%(6만건) 수준에 불과하다.
국토교통부는 논란이 커지자 "주택 중개의 상호 편의를 높이기 위해 시스템 활용 방안을 고려했지만, 중개사 없는 시스템을 논의한 바 없다"라고 해명했지만, 협회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협회 관계자는 "정부는 협회와 단 한 번도 소통에 나서지 않은 것도 문제"라며 "'집단 이기주의'로 비치는 것에 대해 조심스러웠지만, 기본적으로 정책 시스템의 허점을 선제적으로 보완해야 부동산 시장이 바로 설 수 있다"라고 말했다.
공인중개사들의 반발과는 다르게 여론의 반응은 차갑다. 중개사들에 대한 불편한 오해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동안 부동산 거래 과정에서 일반 시민들이 겪은 불신과 서비스 불만족이 크다는 게 업계를 향한 평가다.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30대 P씨는 "집값은 크게 뛰고 수수료도 덩달아 올라갔지만, 인터넷에서 직접 수집할 수 있는 정보와 비교하면 질 높은 상담을 받다고 느끼지 않는다"라면서 "내야 하는 금액 만큼 중개사가 제공하는 서비스가 충실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시대적 흐름에 따라 중개 업계도 기술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동산 업계에도 프롭테크 등 IT 기술이 접목되고,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중개사 못지않은 정보 수집이 가능해지면서 중개사 의존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달 폐업한 공인중개업소는 1097건으로 전월 수준을 유지했지만, 개업한 중개업소는 1302건으로 전월 대비 11.3% 감소했다.
때문에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를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 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공인중개사가 아닌 사람이 자격증을 대여해 버젓이 중개업을 하는 예도 있고, 출신·성향이 다양한 중개사들에게 통일된 교육도 제공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협회 차원에서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업계 차원에서 자정 노력이 병행된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국민의 동의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