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이진희 기자] "채용 비리 때문에 은행 산업이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킨 것에 대해 국민들께 송구합니다."
잊혀가던 은행권 '채용 비리'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2017년 10월 국정감사장에서 시작된 채용 비리 사태는 올해 국감에서도 뜨거운 감자다.
사실 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때 당시 국감과 달라진 점은 없었다. 시중은행 채용 비리에 대한 후속 조치가 미흡하다는 질타는 여전했고, 윤석헌 금감원장은 "국민들께 송구하다"며 고개를 숙여야 했다.
3년이란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채용 비리 문제가 다시 논란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기존 이슈를 재탕, 삼탕하는 국감의 문제일까. 그렇다고 치부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채용 비리가 '현재진행형'이어서다.
관련자들의 근황만 살펴봐도 채용 비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실제 은행권 채용 비리 관련 재판 기록을 보면 시중 4개 은행에서 대법원 유죄판결에도 불구하고, 유죄에 인용된 부정채용자 61명 가운데 41명이 아직 재직 중이다. 별다른 조치 없이 정상적으로 근무를 이어갔다는 얘기다.
이 가운데 채용 비리 사태를 촉발했던 우리은행의 경우 재직 중인 부정입사자만 19명에 달한다. 2심 재판이 진행 중인 신한은행은 18명의 부정입사자가 근무하고 있으며, 채용점수 조작으로 검찰 기소 인용만 240건에 이르는 하나은행은 아직도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우리은행 측은 이날 "부정 입사자에 대해 채용 취소가 가능한지 법률 검토에 착수했다"고 밝혔으나, 뒤늦은 조치라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 구제책이 있을 리 만무하다. 채용 비리 피해를 막기 위해 지난 2018년 은행연합회가 마련한 '은행권 채용절차 모범규준'은 부정합격자에 대해서 은행이 해당 합격자의 채용을 취소하거나 면직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권고사항일뿐더러, 이전에 발생한 사건에 대해선 소급 적용할 수 없다. 사실상 '무용지물'인 셈이다. 은행들 역시 피해자를 다시 채용하기는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누가 채용 비리로 인해 피해를 입었는지 특정할 수 없다는 게 그 이유다.
그렇다면 온 힘을 다해 버텼던 '취준생'들은 좌절감에 익숙해져야 할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윤석헌 금감원장이 국감에서 "은행연합회, 금융위원회와 채용 비리에 대한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말하면서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관련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힌 만큼, 금융당국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해 보인다. 은행권 채용에 대한 불신을 무너뜨릴 유일한 방법은 청탁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을 엄단하고, 본인 가담 여부와 상관없이 부정채용 입사자의 채용을 취소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일이다.
청탁에 대한 감시나 엄벌에 대한 강제성이 절실하다는 점은 이미 많은 이들이 귀가 따갑도록 지적하고 있다. 이제는 행동으로 옮길 때다. 실질적인 채용 비리 근절 방안이 마련돼 일상에서의 불공정이 해소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