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결제원 장악 의도...금융위 "한은과 협의"
[서울파이낸스 김희정 기자] 금융위원회가 금융결제원 감독 등 지급결제시스템에 대한 규제를 도입하는 내용으로 전자금융거래법 개정 추진에 나서자 한국은행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금융위가 한은법에 명시된 중앙은행의 권한을 침해하는데다, 이중규제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다.
한은은 18일 "금융위가 마련한 개정안은 한은법에 따라 한은이 수행하고 있는 지급결제제도 운영·관리 업무와 충돌이 불가피하다"며 "이는 한은의 권한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중복규제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앞서 국회와 금융위 등에 따르면, 금융위는 최근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을 마련해 윤관석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장에게 제출하고, 의원입법 형식 발의를 요청했다. 금융위 측은 "정무위원장에게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을 설명하는 차원"이라고 해명했지만, 사실상 윤 의원과 금융위 간 조율 작업이 끝나 이르면 이번 주 내 큰 수정없이 발의될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 개정안의 핵심은 핀테크(금융기술)·빅테크(IT대기업)에 대한 '금융업 규제 완화'다. 이에 따라 기존 은행·카드사 등 금융기업들은 지속적으로 이런 개정 방향에 불만을 드러내 왔다.
금융사뿐 아니라 한은도 금융위 개정안에 반발하고 있다. 한은이 문제삼는 부분은 '전자지급거래청산업' 관련 내용이다. 금융위 개정안에는 '전자지급거래청산업'을 신설하고, 금융위가 이에 대한 허가, 자료제출 요구 및 검사 권한을 갖는 조항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자지급거래청산이란 자금 이체 과정에서 채권·채무 관계를 서로 상쇄해 거래를 간소화하는 것이다. 이 같은 전자지급거래청산업을 하는 업체는 금융결제원이 대표적으로 금융위 개정안엔 금융결제원을 관리하겠다는 저의가 있다는 게 한은의 판단이다.
현재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한은법 28조에 따라 '지급결제제도의 운영·관리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심의·의결하고 있는데, 금융위의 개정안과 배치되는 것이다. 이는 명백하게 한은법에 명시된 금통위 권한을 침해하고, 이중규제에 해당한다는 게 한은의 입장이다. 금융위의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두 기관 사이에 업무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은은 지난 3월부터 금융위의 요청으로 디지털 지급거래청산업 신설지정, 오픈뱅킹 법제화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면서 이러한 개정안에 반대 입장을 밝혀왔지만 금융위는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지급결제는 경제주체들의 경제활동에 따른 채권·채무 관계를 지급수단을 이용해 해소하는 행위를 말한다. 다수 국가에서 발권력을 가진 중앙은행이 금융기관 간 거래에 필요한 최종결제자산을 제공하며 지급결제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현재 중앙은행이 지급결제시스템을 관리·감독하는 나라는 미국, EU, 영국, 스위스 등이다.
한은 고위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정책 당국이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할 상황에서 양 기관이 갈등하는 모습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며 "금융위는 국회에 제출한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을 공개하고, 중앙은행의 고유업무를 침해하는 해당 조항을 철회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