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이진희 기자] 국내 5대 은행의 전세대출 잔액이 사상 처음으로 103조원을 돌파했다. 전세대란으로 전셋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영향이다. 은행들의 대출 조이기에도 가파르게 늘어나는 수요 탓에 한동안 전세대출 증가세가 꺾이진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11월 말 기준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총 103조3392억원을 기록했다. 작년 말(80조4532억원)과 비교해 22조8860억원 늘어난 수치다.
작년 12월 80조원대로 올라선 전세대출 누적 잔액은 올해 5월 90조원을 돌파한 후 10월에는 관련 집계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100조원을 넘어섰다.
월별 증가폭을 보면 지난 2월(3조3000억원)을 정점으로 잠시 주춤하다 7월(2조2000억원), 8월(2조6000억원), 9월(2조8000억원), 10월(2조5000억원) 등 4개월 연속 2조원대 증가폭을 나타냈다. 월별 전세대출 증가폭이 넉 달 연속 2조원대를 기록한 것은 처음이다.
은행권에선 가파른 전세대출 증가의 요인으로 '전셋값 급등'을 꼽는다. 매물 부족으로 전세난이 가중되면서 뛰어오른 전셋값이 대출 수요를 부추기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한국감정원이 발표한 '11월 전국주택가격 동향'을 보면 지난달 전국 주택종합(아파트·단독·연립주택) 전셋값은 0.66% 올라 전월(0.47%)보다 상승폭을 키웠다. 이는 2013년 10월(0.68%) 이후 가장 많이 상승한 수준이다.
전세매물 씨가 말랐다는 서울의 아파트 중위전세가격의 경우 올해 1월 4억4643만원에서 지난달 5억3909만원으로 9300만원가량 상승하기도 했다.
가팔라지는 전세대출 규모에 부담을 느낀 일부 은행은 이미 대출 속도 조절에 나선 상태다. 우리은행은 지난 10월 말부터 연말까지 우리은행 전세자금대출 상품에 대해 '조건부 취급 제한'을 하고 있다.
앞서 우리은행은 전세대출 금리가 다른 은행보다 낮게 유지된 까닭에 9월과 10월 두 달 새 전세자금 대출 잔액이 2조7000억원 넘게 급증한 바 있다.
은행권에서는 12월에도 전세대출 증가세가 크게 꺾이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증가폭의 차이만 있을 뿐, 올해 들어서 시중은행들은 일제히 전세대출 잔액이 증가했다"며 "전셋값이 많이 오르고 있고, 수요 또한 많은 상황이어서 전세대출 잔액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