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 총량 관리 차원···돈 안 쓰면 이자 부과도 못 해"
한도 유지용 불필요한 대출 일으키는 사람 늘어날 수도
[서울파이낸스 이진희 기자]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압박 속에 은행권이 마이너스통장(한도 대출, 이하 마통) 조이기에 나섰다. 마통을 얼마나 많이 썼는지 들여다보고, 사용률이 낮으면 상품을 연장하거나 재계약할 때 한도를 줄이는 방식이다.
은행들이 마이너스통장 특별 관리에 들어간 만큼, 미리 마통을 뚫어놓은 이들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일각에선 한도를 유지하기 위해 불필요한 대출을 받으려는 고객이 늘어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11일 은행권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은 마이너스통장에 대해 소진율에 따라 대출한도를 축소하는 방안을 시행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 7일부터 3000만원 초과 한도의 마이너스통장을 연장할 때 만기 3개월 전 사용률이 10% 미만이라면 최대 20% 한도를 줄이기로 했다. 가령 5000만원 한도의 마통을 뚫어놓고 10%인 500만원보다 적게 사용했다면 상품 연장이나 재약정할 때 한도 금액이 4000만원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은행도 지난달부터 2000만원 초과 마통 중 10% 미만만 사용했다면 연장·재약정 시 한도의 10%를 줄이고 있다. 한도의 5% 미만을 사용했을 경우엔 20%를 감액한다.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도 마찬가지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7월부터 2000만원 초과 마통에 대해 만기 전 3개월 평균 대출한도 소진율이 10% 이하면 한도를 20% 축소하고 있으며, 하나은행은 비대면 신용대출 상품인 '하나원큐신용대출'에 한해 마통 한도 사용 실적이 낮을 경우 한도를 최대 50% 감액할 수 있다는 내용을 고객에게 공지하고 있다.
이처럼 4대 은행이 일제히 마이너스통장 한도를 조정하는 것은 가계부채 관리방안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최근 대출 규모 증가세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금융당국은 지난해 말에 이어 올해도 은행들에 신용대출 관리 강화를 주문한 상황이다.
은행들은 차주(돈을 빌리는 사람)가 마통의 대출을 실제로 사용하지 않아도 약정 당시 설정한 최대 한도가 대출 잔액으로 잡히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한도 관리에 들어갔다고 설명한다. 특히 한도가 대출 잔액으로 잡히는데도 고객이 돈을 쓰지 않았다면 대출이자를 부과할 수 없어, 현 시점에서는 '골칫거리'로 여겨진다는 게 업계의 얘기다.
한 은행 관계자는 "신용대출 문턱이 더 높아질까봐 돈이 당장 필요하지 않는데도 마이너스통장을 만들어놓는 이들이 많다"며 "사용률이 낮고 한도만 높은 마통은 은행 입장에서 건전성이나 수익성 측면에서 모두 부담이 되기 때문에 가계대출 총량 관리 차원에서 한도를 줄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은행권은 미사용 한도 축소로 확보한 대출 취급 여력을 통해 더 많은 고객에게 대출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기존의 한도를 유지하고자 필요하지 않은 대출을 일으키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업계 관계자는 "만기일 전에 일시대출을 활용해 한도관리를 해두려는 고객이 많아질 것"이라면서 "하지만 마이너스통장은 이자에 이자가 붙는 복리 방식이기 때문에 장기간 대출을 받을 계획이라면 빚이 빠르게 불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