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기조 전환 분명하나, 시장 변화 일시적일 것"
[서울파이낸스 박성준 기자] 전날 밤 미국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논의를 본격화했다는 우려에 시장이 꿈틀거린다. 앞서 한국은행에서도 다가올 금리 인상 충격을 예고하는 듯한 '매파(통화긴축 선호)'적 발언이 이어진 데 이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중앙은행인 연준에서도 기조 변화가 감지된 것이다. 이에 금융 및 원자재 시장에도 파동이 일고 있다.
18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오후 1시 현재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 거래일 종가보다 1.8원 오른 1132.2원에 거래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전날 하룻밤 새 15원가량 오른 1132원에서 출발했으며, 지난달 20일(1132원) 이후 한 달여 만에 1130원대로 진입, 닷새째 강세를 이어갔다. 그동안 미국 대면서비스·고용 부진 등의 여파로 코로나19 충격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의견이 강해 글로벌 달러가 약세 흐름을 보였지만, 최근 강(强)달러로 전환한 것이다.
이는 지난밤 발표된 FOMC 정례회의 결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통화정책을 예상보다 빠르게 긴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연준은 성명을 통해 기준금리(연방기금금리)를 현 0.00~0.25%에서 동결한다고 밝혔다. 당장 연준의 정책 변화는 없다. 하지만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금리 조정 시점을 예상할 수 있는 점도표의 변화, 올해 물가상승률의 변화 등에서 조기 테이퍼링에 대한 힌트가 감지된 것이다.
FOMC 위원 18명 중 7명은 오는 2022년에, 11명은 2023년에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이란 관측을 내놨다. 지난 3월 회의 당시에는 2022년 4명, 2023년 7명이 금리를 인상할 것이란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물가 전망도 올해 2.4%에서 3.4%로 대폭 상향 조정했다.
세계 주요 투자은행(IB)들은 이번 회의 결과가 조기 금리 인상을 가르켰다고 평가하며, 예상보다 더욱 매파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JP모건은 "FOMC 결과가 예상보다 상당히 매파적이었다"라며 "점도표의 변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기자회견에서 테이퍼링을 언제 시작할지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다는 점 등이 눈에 띈다. 오는 2022년 1분기 중 테이퍼링 개시 전망을 유지하고, 이르면 올해 12월에 돌입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에 미국 채권시장에선 장기·단기 반응이 극명히 엇갈리며, 커브 플래트닝 장세를 보였다. 미국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FOMC 발표 직후 1.5% 후반까지 올라섰으나, 이날 나온 주간 실업보험 청구자수가 전주보다 오름세로 돌아서면서 17일(현지시간) 오후 3시께 전 거래일보다 5.2bp(1bp= 0.01%) 하락한 1.507%를 기록했다. 반면 통화정책에 민감한 2년물 수익률은 전일보다 1.8bp 상승한 0.221%에 거래됐다. 또한 모기지 금리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30년 만기 고정 모기지 금리는 3.25%로 뛰면서 지난 4월 중순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글로벌 원자재시장도 달러화 강세에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이날 뉴욕상품거래소(NYMEX)에서 8월 인도분 금은 온스당 86.6달러(-4.7%) 급락한 1774.8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으로는 지난 4월말 이후 7주 만에 최저 수준이며, 낙폭으로는 지난해 11월9일(5%) 이후 가장 큰 폭의 하락이다. 뿐만 아니라 백금과 팔라듐은 각각 7.6%, 11% 급락했으며, 이는 지난해 3월 이후 15개월 만에 최대 낙폭이다. 블룸버그통신은 대두 선물 가격이 지난 5월 고점에서 20% 이상 급락하며 올해 상승분을 모두 반납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반대로 증시는 혼조세 속 긴축 쇼크는 피한 듯 보인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지수(3만3823.45)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4221.86)은 3거래일 연속 하락했지만,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1만4161.35)는 상승장으로 마감했다. 사흘째 사상 최고가 행진을 벌이던 코스피도 전날 숨고르기로 하락 마감했지만, 18일 전 거래일 대비 0.72p 오른 3265.68에 개장했다.
전문가들은 연준의 통화정책 기조가 변화한 것은 분명하나 도입 시기까진 여유가 있고, 때문에 급변하는 시장의 흐름도 일시적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통화정책의 기조가 앞으로 테이퍼링·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데는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아무 조건 없이 진행하는 게 아니라 미국 경기 회복이 전제돼야 하므로 경기 상황이 어렵다면 실행에 옮기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라며 "시장은 긴축 논의 시점을 논의하는 수준에선 FOMC 이슈 외에도 다양한 요인들이 함께 반영되기 때문에 경기 흐름이 일시적·상대적으로 약해졌다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응주 DGB대구은행 차장(수석딜러)은 "그간 연준에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일시적'이라고 주장해온 것이 여전히 좋지 못한 고용지표를 볼 때 이런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라며 "테이퍼링을 당장 시행해 시장의 돈을 흡수하겠다는 얘기도 아니었고, 증시에서도 사실상 영향이 거의 없었다. 그간 핑계 삼아 온 고용지표에 대한 언급이 적어 매파적 해석이라는 의견이 많았지만, 다음 주 중반 이후로는 충격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