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발전→생산성 제고 '시차'···"고성장 기업 투자 늘려야"
[서울파이낸스 유은실 기자] 한국경제의 디지털 기초 체력이 우수한데도 경제성장과 생산성은 둔화되고 있다. 디지털 잠재력은 높지만 생산성 증가율은 오히려 하락하는 '생산성 역설'이 나타난 것이다.
디지털 혁신 기술이 가지는 범용기술로써의 특성과 한국의 산업구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디지털 혁신기반 경제구조로 전환하기 위해 경제주체의 기술 수용성, 조직재편, 인적자본 확충 등 기술혁신을 보완할 수 있는 무형자산에도 대규모 투자가 전제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18일 한국은행이 발간한 'BOK 이슈노트-디지털 혁신과 우리나라의 생산성 역설'에 따르면 한국은 견조한 디지털 역량에도 불구하고 생산성 제고 효과는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파악됐다. ICT에 대한 투자가 증가하고 있지만, 기업·산업·국가 수준의 생산성은 그와 비례해 증가하지 않거나 감소하는 '생산성 역설'이 디지털 분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먼저 한국은 ICT산업 발전 정도, ICT인프라, 유무형 투자, 혁신역량 등 다양한 측면에서 디지털 전환을 위한 기초여건이 견조한 모습을 보인다. 한국의 ICT산업 비중은 2018년 기준 14.8%로 기술 선도국인 미국(8.8%)과 일본(7.9%) 수준을 상회하며 모바일 네트워크 중 5G 비중, 인터넷속도, 디지털정부 평가 등의 영역에서도 1위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견조한 디지털 역량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생산성은 답보 상태다. 2010년대에 들어와 선진국 추격여력이 약화되면서 소득수준은 고소득국가 평균 대비 50%대 수준, 노동생산성은 70%대에서 정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혁신의 성장 잠재력이 높지만 생산성 역설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로 디지털 혁신기술의 내재적 특성인 '범용기술로서의 특성'을 꼽았다. 범용기술이란 장기간에 걸쳐 폭넓게 확산돼 새로운 혁신을 창출할 수 있는 기술을 의미한다. 즉 무형자산을 다루는 디지털 혁신기술의 성장 효과가 생산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까지 시차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또 한국경제 구조의 특성도 생산성 역설에 기인한다. 한국은 ICT 제조업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ICT서비스업 경쟁력이 취약하고 유형자산 위주의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인적·조직자본 등 비기술혁신에 대한 투자 부진은 디지털 전환 가속화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데 비기술혁신형 투자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금융 측면에서도 구조적인 한계점이 발견된다. 그간 공공자금 및 정부의 기술금융 지원 정책을 통해 기술금융 투자가 활성화되고 양적인 측면에서는 성장했지만, 안정성을 지향하는 대출 위주의 시장이 형성되면서 고위험, 고성장 기업에 대한 투자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생산성 역설은 조기에 해소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조언한다. ICT산업과 투자 구조를 디지털 혁신에 적합한 형태로 전환해 기업들이 디지털 전환에 역량을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경제 구조의 전환이 적기에 이뤄져야 디지털 혁신 동력이 생산성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정선영 한국경제 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 과장은 "무형투자의 절대적 규모를 확대하고 기술혁신과 비기술혁신에 대한 균형 잡힌 무형투자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제고해야 한다"며 "리스크가 높지만 혁신적이고 신규시장을 형성할 잠재성이 높은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혁신 기술은 정부 주도로 지원·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