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 63%↑·글로비스 4.2%↑
[서울파이낸스 김호성 기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총수 자리에 오른 지난 1년간 그룹 시가총액이 30%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 LG, SK 등 4대 주요 그룹사들과 비교해 사실상 가장 큰 증가율이다. 현대차그룹의 지난 1년간 시총 증가폭은 주요 계열사를 잇달아 상장시키며 그룹 규모를 급격히 증가시키는데 성공한 SK와도 견줄만했다.
이달 14일이면 정 회장이 아버지인 정몽구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그룹 1인자로 오른지 1년이 된다. 정 회장 취임 이후 현대차그룹은 친환경차, 자율주행차, 로보틱스,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등 미래 모빌리티 사업을 빠르게 전개하며 내연기관 중심의 자동차 기업에서 미래산업 기업으로 환골탈태중이다.
정 회장은 특히 수소에너지 전도사로 불리며 한국의 수소경제 발전을 주도해 왔다. 현대차그룹이 수소경제의 '퍼스트무버(First Mover)'로서 자리매김하면서 그룹의 금융투자(IB) 업계에서도 긍정적 평가를 받았고 이는 그룹 시총의 급격한 증가로 이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10일 한국거래소와 금융정보업체 인포맥스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의 전체 시가총액은 정 회장 취임 하루 전인 지난해 10월 13일 105조8천억원(종가 기준)에서 지난 8일 136조1천억원으로 30조3천억원(28.7%) 증가했다. 그룹 전체 시총은 현대차와 기아, 현대모비스와 우선주 등 국내 주식시장에 상장해 있는 17개 종목의 시총을 합한 규모다.
증가 폭은 같은 기간 코스피 상승 폭(23.0%, 2,403.15→2,956.30)보다도 크다. 주요 4대 그룹 중에서는 사실상 시총이 가장 큰 폭으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삼성그룹은 570조3천억원에서 684조8천억원으로 20.0% 커졌고, LG그룹은 119조7천억원에서 137조4천억원으로 14.9% 불어났다.
SK그룹의 경우 140조원에서 192조4천억원으로 37.1% 늘었다. 이는 SK 아이이테크놀로지와 SK바이오사이언스, SK바이오팜, SK리츠 등이 상장했기 때문이다. 이들 4개 종목의 시총 합은 40조원으로 이 종목들을 제외할 경우, 증가율은 8.6%에 그친다.
현대차그룹의 상장사를 종목별로 보면 현대차와 기아, 현대모비스 등 3인방의 시총 합은 81조원에서 102조2천억원으로 21조2천억원(26.1%) 늘었다. 그룹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년 전 77%에서 75%로 소폭 줄어들었다.
현대차는 주가가 17만9천원에서 20만5천원으로 상승하면서 시총도 38조2천억원에서 43조8천억원으로 14.5% 증가했다. 현대모비스는 22조3천억원에서 25조2천억원으로 12.6% 늘었다. 그러나 두 종목 모두 그룹 시총 증가율에는 미치지 못했다.
기아의 경우 주가가 5만300원에서 8만1천900원으로 급등해 시총도 20조3천억원에서 33조2천억원으로 62.8% 급증했다. 미국 시장에서 최다 판매 실적을 기록하는 등 좋은 실적을 보이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정 회장이 그룹 상장사 중 지분을 가장 많이 보유해 향후 그룹 지배구조 개편에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관심을 받은 현대글로비스 주가는 16만5천원에서 17만2천원으로, 시총(6조1천억→6조4천억)은 4.2% 각각 증가했다.
정 회장이 보유한 전체 주식 가치는 1년 전 3조512억원에서 3조6천690억원으로 20.2% 증가한 것으로 추정됐다.
현대차그룹의 시총이 이처럼 빠르게 증가한 주된 배경으로 정 회장 취임 후 미래 산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함께 가시적 성과가 주효한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정 회장은 지난해 10월14일 취임사에서 '개척자'가 되겠다고 선언하며 "전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미래 모빌리티 시장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힌바 있다.
구체적으로는 대표적인 미래 모빌리티인 자율주행차와 로보틱스,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스마트시티 같은 상상 속의 미래를 조기에 현실화해 인류에 한 차원 높은 삶의 경험을 제공하겠다고 강조했다.
이후 정 회장은 지난해 12월 약 1조원을 투자해 세계적 로봇 기업인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하며 취임사에서 밝힌 의지를 빠르게 실행했다.
현대차그룹은 보스턴 다이내믹스와의 첫 협업으로, 대표 제품인 4족 보행 로봇 ‘스팟’을 기아 오토랜드 광명에 시범 투입해 공장 내부의 위험을 감지하고 안전을 책임지도록 했다.
자율주행에서도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달 독일에서 열린 ‘IAA 모빌리티 2021’에서 전용 전기차인 아이오닉 5를 기반으로 모셔널과 공동 개발한 로보택시의 실물을 처음 공개했다.
또 정 회장은 글로벌 수소경제 ‘퍼스트 무버’로서 활동을 확대하며 글로벌 수소산업 생태계에서 그룹의 위상을 높여왔다.
국무총리 주재 수소경제위원회 참석으로 회장직 첫 일정을 수행한 정 회장은 지난해 말부터 국내외에서 수소경제 전도사를 자처했다. ‘2040년 수소에너지 대중화’를 선언한 것도 정 회장이다. 올해 초부터 최태원 SK그룹 회장,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 등과 잇달아 만나 수소 관련 기술·사업 협력 의지를 다졌고, 3월에는 한국판 수소위원회 설립을 주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