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시장 악순환"
[서울파이낸스 노제욱 기자] "여기는 매달 나가는 교육비만 해도 만만치 않아서 원래 월세로 사는 곳이 아닌데, 요즘 월세 찾는 분들이 많네요"(목동 A 공인중개사무소 대표)
지난 25일 기자가 방문한 목동 공인중개사무소 일대의 근무자들은 하나같이 "요즘 월세로 거주하겠다는 손님들이 이전에 비해 확실히 많아졌다"고 입을 모았다.
목동은 학군이 상대적으로 우수하다고 평가받는 지역으로, 이곳을 찾는 이들은 주로 자녀 교육을 위해 '전세'로 거주하다 대학 입시까지 치른 이후에는 이 지역을 떠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러나 한국은행의 잇따른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해 전세자금대출 금리가 전월세전환율보다 높은 현상이 나타나면서 '월세'를 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전세대출로 인해 월마다 내야 하는 이자보다 월세로 거주하며 내는 비용이 더 저렴해진 것이다.
목동 A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전세대출 이자 내는 것보다 월세로 사는 게 더 싸기 때문에, 월세를 찾는 손님들이 늘고 있다"며 "이전에는 월세 거래가 전체 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 정도였다면, 최근에는 30~40%까지 늘었다"고 말했다.
인근 B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보증금은 낮게, 월세는 높게'가 요즘의 추세"라며 "예를 들어 6억5000만원의 전세 매물이 있으면, 보증금 5000만원에 월 180만원으로 계약이 이뤄지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시중은행 전세대출 금리는 빠르게 오르는 추세다. 지난해 초만 해도 연 2~3%대였으나 현재 4대 은행(국민‧신한‧우리‧하나)의 전세자금대출 금리는 최저 연 2.9%~최고 5.1% 수준까지 올랐다.
예를 들어 4.57% 금리를 활용해 전세자금 3억원을 대출받으면 연이자가 1371만원이고, 세입자는 매달 114만2500원을 내야 한다.
그런데 전세자금을 대출받는 대신 3억원의 전세 보증금을 월세로 바꾸면 전월세전환율 4.1%(2021년 11월 서울 아파트 기준)를 적용해 매달 102만5000원을 내면 된다.
전세자금 대출을 받는 대신 월세로 거주하면 달마다 11만7500원, 1년에 141만원을 아낄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월세를 찾는 움직임은 목동뿐만이 아니라 서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서대문구 C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지난해 가을에는 전세난이었지만 요즘은 월세난"이라며 "이 지역에는 대출로 돈을 끌어 갭투자한 사람들도 많은데, 이들도 금리가 오르니까 부담이 늘고 또 여기에 종부세까지 있으니 월세로 내놓으면서 결국 세입자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포구 D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거래 장부를 들어 보이면서 "여기 대부분이 월세 거래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들 월세만 찾으니까 전세매물은 쌓이고 있다"며 "매물이 적체되니까 전세가격은 떨어지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는데, 최고 12억원까지 거래됐었던 평형이 얼마 전에 9억원에도 거래가 성사되는 등 하락 추세"라고 전했다.
서울에서 월세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 자료를 보면 지난해 서울에서 월세가 낀 아파트 임대차 거래량은 26일까지 신고된 건수를 기준으로 총 6만9713건이다. 이는 2011년 관련 통계 집계가 시작된 이래 가장 많은 것으로, 신고 기한이 아직 남아있음에 따라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는 어쩔 수 없이 월세로 거주하는 이들이 많아짐에 따라, 이들이 무주택자에서 벗어나기 갈수록 힘들어지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매달 고정 비용이 지출되는 것은 서민에게 큰 부담이지만, 대출 이자보다는 그나마 낫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월세를 택하는 것"이라며 "매달 임대료 부담에 돈을 모으지 못해 '내 집 마련' 꿈이 멀어지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시장의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