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대법원 '백내장 입원, 6시간 이상 치료해야 인정' 판결
"안과 입원실 거의 없어···환자 특수성·소비자 권리 고려해야"
[서울파이낸스 유은실 기자] # A씨는 지난 4월 오랫동안 눈에 불편함을 호소해 온 어머니와 함께 안과를 찾았다. 백내장 수술을 권하는 의사의 처방에 따라 다초점 렌즈를 삽입하는 백내장 수술을 받고 실손보험을 청구했다. 지난해 지인이 실손보험으로 백내장 수술 비용을 지급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A씨의 어머니도 1000만원의 수술비·진료비를 받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보험사에서 40만원 정도의 통원 진료비만 지급이 가능하다고 통보받았다.
올해 들어 실손보험금 지급을 둘러싼 보험사와 소비자의 법적 분쟁이 늘어나고 있다. 기존 '법리적 관점'에선 보험사가 약관에서 정의한 요건에 해당하는 경우 보험금 지급이 이뤄지는 것이 맞았지만, '계리적 관점'에서 높은 손해율, 보험료 인상, 보험 사기 가능성 등을 고려해 부지급이 발생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관점에 따라 실손보험금 지급 문제가 달라지는 상황에서 법원이 '일률적인 적용보다는 환자의 개별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선을 긋자, 과잉진료와 보험사기로 몸살을 앓던 보험업계는 "일단 다행"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반대로 보험소비자의 부담과 분쟁 가능성은 커졌다. 이에 따라 선량한 보험 소비자들의 권리를 보호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대법원 민사2부는 지난 16일 국내 한 보험사가 실손보험 가입자 A씨를 상대로 제기한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보험사는 A씨가 받은 백내장 수술이 통원치료에 해당되기 때문에 입원치료 보험금을 제공할 수 없다며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그동안 백내장 수술엔 입원 치료를 전제로 하는 포괄수가제(여러 치료 항목을 묶어 진료비 책정하는 방식)가 적용돼 왔는데, 이 이유만으로 백내장 수술을 일률적 입원치료로 볼 수 없다는 2심 재판부의 판단을 유지한 것이다. 반면 1심에서는 보험약관상 입원의 개념이 '6시간 이상 병원 체류'라고 정의하고 있지 않다며 소비자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과잉진료 논란이 사회적 문제로 불거지면서 보험사와 소비자, 보험사와 의료기관 간 보험금 지급 시비 문제가 법적 분쟁으로 번지는 사례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지난 4월엔 '자궁근종 하이푸 수술 실비보험 부지급 피해자 모임' 회원들이 기자간담회를 열고 단체 행동과 법적 대응을 예고했고, 3월엔 대법원은 보험사들이 '맘모톰(Mammotome) 시술'을 한 의사를 상대로 낸 실손보험금 반환 청구 소송 사건의 공개변론을 열었다.
올해 초엔 국내 대형 손해보험사들이 피부과에서 주로 사용하는 보습제인 MD크림의 실손의료보험금 지급을 일부 거절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보험사들은 지난 2019년 대법원이 의사 주체 행위로 발생한 비용만을 입·통원 비용으로 인정한 판결에 따라 의사 권고로 사용된 MD크림에 대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했다.
보험업계 및 관련 업계는 금융당국과 법원이 실손보험 지급 관련 기준과 선을 어느정도 정해주고 있지만 여진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지급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있는 데다, 백내장 이외에도 분쟁의 여지가 있는 다양한 비급여 항목이 많기 때문이다. 정확한 약제명이 확인되지 않는 '혼합주사제', 미용과 치료 경계에 있는 '비밸브재건술' 등도 여기에 꼽힌다.
배홍 금융소비자연맹 보험국장은 "대법원이 백내장 판결을 통해 입원과 통원의 기준을 6시간으로 제시했는데, 사실상 안과에는 입원실이 없어 입원 치료를 받고 싶어도 못하는 경우도 있다"며 "이번 판결은 안과 환자의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고, 일부 특정 지역과 의료기관에서 자행되는 블랙컨슈머 이슈를 선량한 보험소비자까지 확대한 케이스라 아쉽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렇게 판결이 환자의 개별적인 상황을 확대해 적용하는 방향으로 가면, 약관을 보고 필요에 따라 치료를 받은 보험소비자 입장에서는 보험금 신청에 대한 부담이 상당해 진다"며 "차라리 가입 당시에 언더라이팅을 제대로 하고 보장이 필요한 시기에 약속한 프로세스에 맞게 보험금이 지급되어야 법적 분쟁에 대한 우려도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로 과잉진료·보험사기가 줄고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비급여 항목에 대해 사회적인 합의점이 도출된다면 실손보험 누수도 줄어들 것"이라면서 "다만 약관에 적힌 내용과 의사의 진료에 따라 치료와 수술을 하는 선량한 소비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보호책과 분쟁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한 것도 맞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과 보험사들이 모여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