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중동본부 UAE에 두는 등 사우디와 관계 틀어졌을 수 있다" 관측
일각선 "LG그룹이 사우디와 관계 나쁜 미국 눈치를 본 것 아니냐" 해석도
[서울파이낸스 이서영 기자] 오일머니로 무장한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국내 재계 총수들이 지난 17일 회동한 가운데 4대 그룹 총수 중 유독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빠져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3년 전인 2019년 빈 살만 왕세자가 방한했을 때는 구 회장이 그와 만나 사업 협력을 논의했지만, 3년 뒤엔 만남조차 성사되지 않은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LG그룹이 사우디 정부 측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데 실패한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기도 한다.
21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빈 살만 왕세자 방한과 함께 한국과 사우디 간 체결된 26건의 계약·양해각서 중 사업 협력 당사자에서 빠진 10대그룹은 SK, LG, 신세계다.
신세계 그룹은 백화점, 대형마트 등이 주요 업종이다보니 네옴시티 사업 수주와는 큰 연관성이 없다.
SK그룹은 이번 계약 건은 없지만, 최태원 SK회장이 빈 살만 왕세자와 회동에 참석해 향후 에너지, 정보통신기술(ICT) 등의 사업 방향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이번 회동에는 참석하진 않았지만, 이미 롯데정밀화학과 롯데건설 등이 네옴시티 프로젝트 계약을 따냈다.
유독 구 회장만 사우디 측에서 회동 요청도, LG 측에서 만나자는 요청도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수백조원의 막대한 사우디 프로젝트 수주전에 LG만 참가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게 재계 관측이다.
더욱이 한 중동 건설전문 매체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발주 공사는 미래도시 '네옴시티' 프로젝트(약 670조원 규모)가 끝이 아니라, 사우디 '기가 프로젝트'는 총 7190억달러(약 986조원) 규모로 지금까지 300억달러(약 41조 원) 규모만 발주된 데 그쳤다.
지난해 LG그룹이 계열사 S&I코퍼레이션의 핵심 사업인 건설사업 부문(S&I건설) 매각을 마무리해 사업 포트폴리오에 건설부문이 없다고 해도, 향후 기가프로젝트 내 스마트시티 등과 적용되는 인공지능(AI) 등 관련 사업 수주를 노려볼 만한 게 많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LG그룹과 사우디아라비아 정부 간 관계가 틀어진 것이 아니냐는 시각을 제기한다. 지난해부터 사우디 정부는 '자국 우선주의' 정책을 시행하면서 2024년부터 자국에 중동지역 본부를 두지 않은 기업과는 사업 계약을 맺지 않기로 했다.
LG의 주요 계열사인 LG전자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중동지역본부를 두고 있지만, 사우디에는 본부가 없고 일부 가전 생산공장만 두고 있다. 이에 비해 삼성전자는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 중동지역본부를 두고 있다. 사우디와 UAE는 적대국은 아니지만, 중동 지역 경제 패권을 놓고 경쟁하는 사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에 만나게 된 8명의 총수는 사실상 빈 살만 왕세자의 '픽'(Pick)으로 보여진다"며 "일본 방문 일정도 하루만에 취소하는 사람이라 언제 마음이 바뀔 지 모르지만, 8개 그룹 총수들과만 회동해 네옴시티 등과 관련해 어떤 사업을 하고 싶냐고 일일이 물었다고 하니 LG 구 회장은 의도적으로 배제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미국과 사우디와의 최근 관계 악화를 염두에 둔 LG그룹이 사우디 왕세자 회동을 기피한 것 아니냐는 시각을 내놓기도 한다. 70년 넘게 우방국이던 미국과 사우디가 "사우디는 인권 탄압 국가"라고 비판하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 이후 관계가 악화하고 있다. 또 석유 증산 문제로 사우디와 미국 사이에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이 와중에 LG그룹은 9년만에 흑자로 전환한 자동차 전장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고, 최근 미국 애플과 대규모 전장부품 공급 거래설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LG그룹 입장에선 사우디 수주전 참가보다는 미국 쪽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관측은 그래서 나온다.
구 회장이 참석하지 않은 배경에 대해 LG그룹 관계자는 "사우디 측에서 초청하지 않은 것일뿐"이라며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