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강력 반발···"보이콧·위헌 소송 불사, 자율권 있어야"
[서울파이낸스 이진희 기자] 14년간 공회전을 거듭하던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법'이 어렵사리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 관문을 넘었다.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를 남겨두고 있지만, 여·야가 공감대를 이루며 9부 능선을 넘었다는 평가다.
다만 법안 통과까지 난항을 예상하게 하는 걸림돌은 여전하다. 간소화 업무를 담당할 중계기관 선정을 둘러싼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데다 당장 의료계가 위헌 소송까지 불사하겠다고 나서면서 적잖은 진통이 따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대한의사협회·대한병원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대한약사회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보험업법 개정안)이 국회 정무위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과 관련해 위헌 소송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이들 4개 단체는 해당 법안이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보고, 의료계에서 주장하는 바가 고려되지 않을 경우 본격적인 소송에 나서기로 뜻을 모았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은 말 그대로 보험 가입자가 보험금을 청구하는 과정을 간소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 제도에서는 실손보험금을 청구하려면 가입자가 진료 후 병원·약국에서 관련 서류를 발급받아 보험사에 팩스·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이를 제출해야 하지만, 이 과정을 줄인 게 핵심이다.
실제로 법안이 통과되면 가입자가 요청할 경우 의료기관이 보험금 청구 관련 서류를 전자적 방식으로 보험사에 전송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입자가 번거로운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종이서류 없이 전산으로 바로 보험사에 쏴주는 식이다.
불편한 청구 절차 탓에 매년 보험사에 쌓이는 돈이 3000억원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돈이 소비자에게 돌아갈 수 있는 길이 간소화로 인해 트이는 셈이다. 이 법안은 의료계의 거센 반발로 10년 넘게 미뤄지다 지난 15일 국회 정무위 문턱을 넘었다. 남은 단계는 법제사법위원회와 국회 본회의뿐이다.
어렵게 추진동력을 얻었지만, 이를 둘러싼 잡음은 여전하다. 의료계와 일부 시민단체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는 만큼 법안 통과까지 난항이 예상된다는 점은 이전과 다를 게 없는 상황이다. 현재 의료계는 그간 논의한 내용들이 빠진 채 무리한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이대로 법안 통과가 진행된다면 데이터 전송 거부 운동 등 보이콧과 위헌 소송 등 직접적인 움직임을 예고했다. 실손보험 데이터를 강제 전송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기관이 이를 전송할지를 결정할 수 있는 자율권이 주어져야 한다는 게 이들 단체의 주장이다.
법안의 세부 내용을 보면 소비자가 보험금 청구를 위해 요양기관으로 하여금 서류를 보험사에 전자적 형태로 전송해 줄 것을 요청하면, 정당한 사유가 없을 경우 이에 따라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위반에 따른 조치는 포함되지 않았다.
김종민 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는 "데이터를 보내지 않는다고 해서 처벌할 수 있는 내용은 이번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민원이 들어갔을 때는 처벌받을 수 있는 부분"이라면서 "의료기관이 자료를 보내야 할 의무를 법적으로 강제할 순 없다. 환자뿐만 아니라 의료기관도 데이터를 전송할지 말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첨예한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의료 데이터 전송 대행기관(중계기관)에 대해서는 "민간 핀테크 업체를 통한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향후 논의 과정에서 이런 부분들이 반영되지 않는다면 뜻을 모은 협회와 함께 위헌 소송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런 의료계의 반발에도 업계 안팎에선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윤석열 대통령이 내건 주요 공약인 데다 일부를 제외하고 여야가 함께 추진하는 정책이라는 점에서 본회의 통과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핵심 쟁점인 중계기관을 비롯해 데이터 요청 방법과 절차, 전송방식 등에 필요한 세부사항은 시행령에서 정하도록 한 만큼, 세부 시행령을 놓고 2라운드에 돌입했다는 분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의료계의 반발을 고려해 중계기관을 향후 대통령령으로 정하기로 했지만, 향후 논의 과정에서 이해관계가 극명하게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며 "소비자 입장에서 봤을 때 편의성이 제고된다는 점이 분명해, 이를 고려한 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