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미국 내 '점프 리스크'가 급부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오는 7월까지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하지 못할 경우 첫 인하시점이 자칫 내년으로 후퇴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전망이 나온 배경은 올해 11월 5일 치러지는 미 대통령 선거가 자리 잡고 있다. 바이든 현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 간 초접전 승부가 예상되는 가운데, 전통적으로 미 경제가 호황을 누릴 경우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연준 입장에서도 6월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 회의에서 금리 인하를 단행하지 못할 경우,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정치적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물가상승률 목표치인 2%에 안정적으로 도달했다는 확신이 서지 않은 채 섣불리 금리인하를 단행할 경우 정치적 공격을 비껴가기 어렵다는 사실을 연준 관계자들도 신경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올해 FOMC는 5‧6‧7‧9‧11‧12월 6차례 남겨두고 있다.
연준은 고삐 풀린 물가를 잡기 위해 지난해 7월부터 5.25~5.5%에 달하는 기준금리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2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식지 않는 고용시장과 뜨거운 물가 탓에 금리인하 신중론을 넘어 금리 인상론이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 때문에 금리인하가 사실상 내년으로 '물 건너 간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앞서 지난 3월 FOMC 점도표(향후 금리 경로)에선 올해 세 차례 금리 인하 계획을 유지하면서, 시장에선 6월 금리인하 기대감이 커졌다.
이처럼 '금리 로드맵'이 1~2개월 새 돌변한 것은 진정되지 않는 물가뿐 아니라 이스라엘-이란 분쟁 등 대외 불확실성이 한층 가중됐기 때문이다. 지정학적 리스크로 당장 국제유가가 크게 요동쳤을 뿐 아니라 원‧달러 환율 역시 한 때 1400원대를 돌파하는 등 우리 경제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다.
특히 고물가‧고금리 장기화에도 견조한 미국의 실물경제와 달리,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 경제는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신 3고(高)' 직격탄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최근 '국제유가 충격이 국내 물가에 미치는 영향 분석' 보고서를 통해 이스라엘과 이란 분쟁이 전면전으로 치달을 경우 유가 폭등으로 올해 4분기 우리나라 물가상승률이 최대 4.98%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문제는 서민들은 신 3고 시대를 오롯이 맨몸으로 버텨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점이다. 최근 발간된 '2024 신한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월평균 가구 총소득은 전년 대비 4.4%(23만원) 상승한 544만원으로 집계됐다. 반면 가구의 월평균 소비액은 276만원으로 전년 대비 5.7%(15만원)나 늘었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고물가 여파로 월평균 소비액 증가율이 월평균 총소득 증가율을 웃돈 것이다.
또 인플레이션 탓에 기본 생활비로 분류되는 식비‧교통비‧주거비 등의 비중이 전체 소비의 절반(50.7%)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부담이 커졌다. 높아진 물가에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응답자의 68.6%가 점심 값 절약을 시도했다고 답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고공행진을 펼치는 물가가 당분간 쉽게 잡힐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점이다. 지난 3월 생산자물가지수가 122.46(2015년=100)로 전월 대비 0.2% 상승, 넉 달 연속 오름세를 이어갔다. 식탁물가인 농수산물과 공산품 등이 전반적으로 생산자물가 상승세를 주도했다는 분석이다. 생산자물가는 1~2개월가량의 시차를 두고 물가에 반영돼, 소비자물가의 선행지표로 해석된다.
그동안 4월 총선을 앞두고 눌러왔던 공공요금 인상이나 먹을거리 가격인상 등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는데다, 원자재 값 상승 압박 역시 여전하다는 점도 물가 상승압력으로 잠재하고 있다.
이르면 다음 주 개최되는 '영수회담'에 앞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회담에서 논의될 의제를 놓고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신 3고에 고통 받는 서민을 위해 모든 의제를 놓고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흉금을 터놓고 생산적인 대화와 함께 대안 마련이 시급한 때다. 정쟁이 될 만한 의제는 뒤로 미뤄놓고 이견이 적은 시급한 민생문제부터 실타래를 풀어가야 한다.
김창남 금융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