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 '사외이사 자격' 까다로워진다…지배구조 수술대
채용경로 다양화 및 임기 축소
CEO승계 업무 상시화 방안 마련
[서울파이낸스 정초원기자] 금융당국이 국내 금융사의 지배구조 체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그간 논란이 됐던 사외이사의 '자기 권력화' 문제에 손을 댔다. 금융사 최고경영자(CEO)와 대주주를 견제하고 주주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도입됐던 당초 취지와는 달리, 오히려 지배구조 체제가 'CEO 승계 리스크', '사외이사 권력화' 등의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20일 금융위원회는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을 발표했다. 이번 모범규준은 이사회의 '견제와 균형' 기능이 제대로 수행될 수 있도록 사외이사의 자격기준을 강화하는 데 방점이 찍혔다.
김용범 금융정책국장은 "현재 금융사의 이사회는 CEO, 주주총회와 함께 경영 과정에서 가장 큰 권한을 가진 기구인데, 그 구성원이 대부분 사외이사로 채워져있어 이들에 대한 기대를 안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사외이사 구성이 특정한 공통의 배경이나 직업군에 쏠리면서 자기 권력화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금융위가 4대금융지주(신한·KB·하나·우리) 사외이사의 출신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작년 3월 사외이사 가운데 교수·연구원은 26.5%였지만, 올해 9월말에는 이 비율이 50%로 대폭 늘었다. 최근 금융권에 관피아 배제 움직임이 두드러지면서 사외이사 선임 과정에서도 학계 편중 현상이 심화된 것이다. 사실상 사외이사들의 업무능력보다는 형식요건 중심으로 선임되는 관행 탓이다.
이에 금융위는 이사회가 특정 배경이나 이해관계를 대변하지 않을 수 있도록 '다양성의 원칙'을 신설했다. 특히 사외이사의 전문성 확보 차원에서 '핵심 자격요건'을 제시하고, 기존 CEO나 사외이사뿐만 아니라 외부기관에서도 사외이사 후보군을 추천하도록 해 채용경로를 다양화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사외이사의 자기 권력화를 차단하기 위해 임기를 기존 2년에서 1년으로 축소하는 방안도 마련됐다. 다만 사외이사의 임기가 짧아지는만큼 재선임을 자주하게 되고, 이에 따른 독립성 문제가 생길 수 있어 단임제(3년 또는 2년)로 운영하는 방안도 고려되고 있다.
사외이사에 대한 평가도 강화한다. 금융위는 매년 금융사가 자체평가를 하고 2년마다 외부기관에 의해 평가받는 방식을 권고하고, 장기적으로는 의무화 할 예정이다. 평가지표 등은 외부기관에 의해 적정성을 점검을 받도록 유도해 평가의 객관성을 높이도록 했다. 이 평가 결과는 사외이사 재선임시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추천서에 첨부된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사외이사 선임 과정에서 자기추천 방식은 원천 금지되며, 상호추천의 경우 후보 추천자와의 관계와 추천사유를 서술형으로 기재해야 한다. 또 지배구조 연차보고서에 사외이사의 선임사유와 주요 활동내역, 개인별 보수 내역을 상세 공시해 주주ㆍ시장의 감시·평가기능을 강화하도록 했다.
여기에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도 금융 전문성과 다양성을 갖춰야 한다. 이사회 내 위험관리위원회와 보상위원회에는 금융ㆍ회계ㆍ재무 분야 경험자 1인 이상이 중복되지 않고 포함해야 한다.
금융위는 개별 금융사들이 CEO 승계계획을 마련해 CEO 리스크를 미리 차단할 수 있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구체적으로는 임원후보추천위원회를 신설해 CEO 후보군관리 등 CEO승계 업무 상시화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앞으로 금융사 이사회는 어떤 방식과 절차로 CEO를 선임해야 하는지 승계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연 1회 이상 CEO승계 계획의 적정성을 점검해야 한다.
또 CEO 자리가 빌 경우 비상승계계획을 통해 신속히 대행자를 지정하고, 적극적인 CEO후보 발굴과 후보군 관리, 검증 및 평가를 진행토록 했다. 아울러 지배구조 연차보고서에는 CEO승계 내부규범과 구체적인 승계 절차를 공시되며, 임원후보추천위원회가 이사회에 CEO 후보자를 추천하는 경우에도 구체적인 추천경로와 추천경력, 추천사유를 공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