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큰 그림' 빠진 삼성그룹 77주년
[서울파이낸스 박지은기자] 새해 창립 77주년을 맞는 삼성그룹이 내년에는 신년하례식을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매년 발표하던 신년사도 이건희 회장의 건강 문제로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이재용 부회장이 이 회장을 대신해 신년사를 전할 것이라는 추측도 결국 빗나갔다.
삼성은 이 회장의 와병을 감안해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는 건 어쩔 수 없다. 그간 삼성의 신년사는 글로벌기업이자 국내 대표기업의 한 해 경영화두를 제시해왔다는 점에서 경제계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았던 탓이다.
더욱이 2015년은 그룹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가 글로벌시장을 향해 승부수를 던져야하는 해이기도 하다. 최근 진행된 삼성전자 글로벌 전략회의에는 국내외 임원진 600여명이 모여 중국 스마트폰 시장 부진에 대한 대응책 등을 놓고 머리를 맞댔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이 자리에 빠졌다. 실질적 시장대응 방안과 구체적인 전략을 수립하는 회의라는 점에서 굳이 참석할 필요가 있냐는 이유에서다. 최근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제일모직 상장까지 마무리된 상황이지만 정작 이 부회장은 제대로 된 경영 구상을 밝힌 적이 없다.
혹자는 삼성의 이같은 경영스타일에 대해 '오너와 전문경영인의 조화'라고 평가한다. 故 이병철 창업주와 이건희 회장의 강력한 추진력을 전문경영인으로 이뤄진 핵심 참모진이 뒷받침 하는 형태라는 것.
오너가 '큰 그림'을 그리면 세부 사항은 전문경영인들이 채워 넣는 방식이다. 문제는 지금 삼성에는 큰 그림을 그려야할 오너가 와병 중이라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이 당장 이 회장의 빈자리를 채우기에는 '이르다'는 시각도 나온다. 그룹 전체의 경영화두를 제시하는 일 역시 마찬가지. 이 부회장의 경우 경영능력에 대한 검증 작업이 '진행 중'이라 해도 무리가 아닌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부회장을 '사실상의 오너'로 보는 시각은 갈수록 팽배해지고 있다. 이 회장의 부재 속에서도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는 지배구조 재편 과정이 이를 뒷받침한다.
당장 삼성으로서는 향후 10년을 책임질 새로운 먹거리 사업 재정비를 핵심 당면과제로 안고 있다. 이 부회장이 삼성의 큰 그림을 그리는 날이 하루빨리 앞당겨져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