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vs 은행, 법인지급결제 허용 싸고 10년째 '줄다리기'

2017-02-16     남궁영진 기자

증권업계 "수천억 내고도 제자리…역차별 더 이상 용인 안돼"
은행업계 "증권사, 유동성·결제 리스크 상존…'은행화' 곤란"

[서울파이낸스 남궁영진기자] "증권사들이 법인지급결제 업무를 하지 못하는 것은 국내 금융투자업계 '기울어진 운동장'의 대표 사례입니다. 이는 올해 반드시 이뤄야 할 선결 과제입니다."

증권사 법인지급결제 허용 논란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다. 최근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이 올해 가장 먼저 철폐해야 할 불합리 규제로 꼽으면서부터다. 그간 공개 석상에서 으레 증권사의 법인지급결제 당위성을 강조했던 그는 이번에는 '부당', '비극' 등 극단적 단어로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법인지급결제란 기업의 자금을 결제하는 것을 말한다. 기업이 계좌를 통해 판매대금이나 공과금 등 각종 대규모 자금에 대해 이체와 수납 업무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이 업무는 은행에만 허용돼 있고, 증권사에는 원천적으로 제한돼 있다. 이에 증권사와 은행권은 10년 가까이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형국이다.

두 업계의 갈등은 지난 2006년이 시초다. 당시 국회 발의 후 이듬해 통과된 '자본시장통합법'에 증권사의 지급결제 업무 허용 방안이 포함됐다. 하지만 은행권은 '증권사의 은행화'를 우려하며 반기를 들었다. 이에 국회 심의 과정에서 중재안을 마련했다. 개인만 대상으로 한 지급결제를 증권사에 허용하자는 방안이다. '증권사 월급통장' 현금관리계좌(CMA)가 그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잡음이 시작된다. 증권사가 지급결제망 특별참가금 명목으로 3375억원의 비용을 금융결제원에 지불했기 때문이다. 증권사는 수천억 원의 금액을 내고도 10년째 개인에 한해서만 지급결제를 허용하고 있다며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당시 25개 증권사들은 개인과 법인을 포함한 지급결제업무가 허용된 것으로 여기고 일찌감치 3375억원을 납부한 것"이라며 "당시 국회에선 법인지급결제 여부에 대해 추후 논의하자는 조건을 달았지만,10년 가까이 답보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증권업계는 다른 업권과의 형평성 문제도 지적한다. 상대적으로 재무건전성이 취약한 상호저축은행과 신용협동조합의 경우 각각 380억원, 160억원을 내고 지난 2001년부터 지급결제망에 참가하고 있다.

황영기 회장은 "증권사는 3375억원을 내고도 10년 가까이 개인지급결제만 이뤄지고"있다"며 "특정 업권의 독점으로 증권업계가 법인지급결제 시장에 들어오지 못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거액의 돈을 냈는데도 금융결제원 내부 규약만으로 법인 지급 결제를 현재까지 이행하지 않는 것은 공정거래법상 위반 소지가 있다"고 꼬집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공정거래법에는 불공정경쟁과 독과점 등과 관련한 조항이 있는데, 증권사의 법인지급결제 제한 문제는 여기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은행권은 여전히 증권사의 법인지급결제에 대한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증권사는 은행에 비해 유동성이나 결제 리스크가 크다는 점에서 '증권의 은행화'는 적절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법인자금은 대규모인데, 증권사는 금융시장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결제 리스크가 상존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또 "전세계적으로 봐도 증권사들이 지급결제망에 들어온 사례는 전무하다"면서 "지급결제는 은행의 고유 업무임에 틀림 없다"고 강조했다.

은행권은 이와 함께 지난 2013년 자본시장에 큰 충격을 안겼던 '동양사태'를 거론하며 법인지급결제 반대 입장에 힘을 싣고 있다. '동양사태'는 동양그룹이 자금난을 타개하기 위해 동양증권을 통해 기업어음(CP)을 무더기로 발행, 개인 채권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안겼던 사건이다.

전문가들은 아직 당국의 입장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향후 증권업계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 자본시장 전문가는 "금융당국에선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긴 했지만, 은행 쪽의 반발이 워낙 심하기 때문에 아직 단정 짓기는 어렵다"며 "다만 최근 들어 업권 간 장벽이 예전에 비해 많이 낮아지고 있어, 이러한 차원에서 봤을 때 결국 증권사 쪽으로 기울 것으로 본다"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