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금리 고삐 죄는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왜?
금리상승기 예대금리차 2.35%p '이자장사' 금감원 "금리산정 합리성 보완해야" 금융권 "가격 결정 자율권 침해" 부글
[서울파이낸스 김희정 기자]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15일 금융이 가계·기업 등 타 부문에 위험을 전가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고 언급하며 금융권 금리인상에 강한 제동을 걸었다. 불과 3일전 금리산정 과정이 불합리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경고한데 이은 두 번째 일갈이다. 금감원은 "금리산정 과정에서 합리성을 보완하라는 취지"라고 설명하지만 금융권에서는 "은행들의 가격 결정 자율권을 침해하는 조치"라며 은근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윤 금감원장은 이날 증권사 리서치 센터장, 애널리스트, 외국계 은행 대표, 민간 경제연구소장 등 금융시장 전문가들과 조찬 간담회를 갖고 "최근 미국 기준금리 인상 이후 국내외 금융시장 변동성이 다소 확대되고 있다"며 "우리금융 부문이 시장금리 상승, 시장 변동성 증가 등으로 증폭될 수 있는 가계부채 등 주요 위험요인들을 점검·대비하는 등 리스크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윤 원장은 또 "금융회사가 가계·기업 등 다른 부문에 위험을 전가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며 "정보 수집과 분석에서 우위에 있는 금융회사들이 수준 높은 리스크 관리 능력을 발휘해 취약 가계, 중소기업 등의 고통을 덜어 줄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최근 금감원은 연일 대출금리 인상에 대해 경고음을 내고 있다. 금리상승기 가계는 대출금리 상승으로 고통 받는데 은행은 이자장사로 손쉽게 돈을 벌고 있다는 인식에서다. 지난 12일 윤 원장은 "은행의 금리 산정 체계를 점검한 결과 가산금리나 (가산금리 구성 항목인) 목표이익률 산정이 체계적, 합리적으로 이뤄지지 못하는 '사례들'이 확인됐다"고 수위 높은 비판을 이례적으로 내놨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금리산정 과정에서 합리성을 보완하라는 취지로, 앞으로 은행권 자율 가이드라인인 대출금리 모범규준 개선을 시작할 계획"이라며 "지난 3월 대출금리 체계 현장점검에서 나온 비합리적 사례들의 세부내역도 조만간 공개될 것"이라고 했다.
금감원이 연일 은행권 '금리체계'에 고삐를 죄는 것은 전날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인상함에 따라 국내 금융사들이 대출이자를 가파르게 올릴 수 있다는 우려를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의 '포용적 금융' 정책에 발 맞춰 서민이자 부담을 낮춰야 한다는 눈치보기도 한 몫했다. 본격적인 금리인상기가 도래하기 전 해결하지 않으면 금융당국의 책임론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생각도 엿보인다. 실제 금감원이 은행 금리산정 체계에 대해 테마감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주택담보대출이나 신용대출 등 대출금리는 조달비용인 기준금리와 가산금리, 목표이익률의 합으로 결정된다. 가산금리는 대출자의 신용등급별 예상 손실률 변화, 은행의 업무원가, 자금조달금리 등락 등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데, 소비자는 정보의 제약으로 은행 간 금리를 비교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이에 은행들이 금리상승기에 편승해 대출금리는 왕창 올리는 반면 예금금리는 찔끔 올리는 방식으로 이자장사에 치중하고 있다는 게 금융당국의 시각이다. 금융사의 대출 대부분이 금리변화에 따라 대출금리를 조정하는 변동금리상품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금리변화에 따른 리스크를 고스란히 고객에게 넘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은행권이 사상최대 이익을 달성한 배경에도 이런 이유가 자리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올해 들어서도 이같은 영업행태는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4월 중 예금은행의 잔액 기준 총수신금리는 연 1.26%로 한달 사이 0.02%p 올랐다. 총대출금리도 0.02%p 오른 연 3.61%를 기록했다. 대출금리에서 수신금리를 뺀 예대금리차는 2.35%p다. 예대금리차는 한은이 금리를 올린 작년 11월 2.27%p에서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이같은 지적에도 시중은행들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시장원리에 따라 결정되는 금리체계를 손 보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향후 금융당국에 의해 가이드라인이 마련될 경우 은행들은 상품 차별성을 잃어버리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A은행 관계자는 "금리상승기에는 가계나 부실기업의 부도위험률도 올라가고 이에 대한 충당금도 적립해야 하는데 그 부분을 무시하고 일괄적인 기준을 적용하라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 관계자는 "기업자율로 둬야 하는 부분에 당국이 사사건건 나서는 것 자체가 관치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며 "은행들의 대출금리를 낮추는 것이 목적이라면 지난해 출범한 인터넷전문은행처럼 또다른 '메기'를 금융권에 풀어 넣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